#1. 김모(33)씨는 지난해 10월 밀린 임금 1,200만원을 못 받고 퇴사했다. 회사는 얼마 뒤 500만원을 줬지만, 나머지는 아직껏 무소식이다. 김씨는 지난 연말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임금체불)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임금을 곧 주겠다”는 사장의 읍소와 “웬만하면 쉽게 풀자”는 노동부 근로감독관의 권유에 고소를 취하했다.
이후 상황은 처음과 같아졌다. 사장은 두 달 넘게 연락 두절이고, 근로감독관은 “한 번 취하한 사건은 다시 고소를 못 한다”며 뒷짐이다. 그는 “감독관이 ‘무료 민사소송 제도를 이용하라’고 하는데, 당장 월세를 못 내면 쫓겨날 판에 몇 개월씩 걸리는 소송은 너무 먼 얘기”라며 한숨 지었다.
#2.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모 다국적 기업의 한국지사장을 지낸 고모(64)씨도 섣불리 고소를 취하한 것에 대해 땅을 치고 후회한다. 입사 4개월 때까지 단 한푼도 못 받은 그는 지난해 8월 이 회사 사장을 검찰에 고소했으나, 역시 근로감독관의 종용으로 임금지급 약속만 받고 고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7개월이 되도록 1원도 못 받은 고씨는 “이미 고소를 취하해 민원이 종결됐다”는 노동부의 답변만 들었다. 그는 “임금을 착취한 악덕 기업인을 노동부가 비호하는 꼴 아니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임금을 못 받은 근로자를 도와주는 정부의 체불임금 구제제도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악덕 기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 근로자의 권리 보장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28일 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가 밀린 임금을 받으려면 노동부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내야 한다. 진정서가 접수되면 근로감독관은 기업주에게 임금 지급을 지도한다. 계속 임금을 안 주는 기업주는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형사처벌(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2,000만원 이하) 대상이 돼 검찰에 고소된다.
문제는 이 때부터다. 다급해진 기업주는 형사 처벌을 피하기 위해 “밀린 임금을 다 주겠다”며 근로자에게 고소 취하를 요구한다. 근로감독관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기업주를 거든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기업주 약속과 감독관의 조언에 고소를 없던 일로 한다. 그러나 현행 법상 임금 지급을 약속하고 고소가 취하된 기업주가 임금을 안 줘도 근로자는 속수무책이다. 한번 고소를 취하하면 같은 건으로 다시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검찰에 다시 고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들의 무성의한 태도도 문제다. 피해 근로자에게 고소 취하를 은근히 강요한 뒤 기업주가 약속을 어기고 돈을 안 주면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라”며 발을 빼 버린다.
고씨는 “근로감독관이 ‘민원을 오래 갖고 있을 수 없다’며 고소 취하를 강요했다”고 털어 놓았다. 경기 안양시의 한 노무사는 “근로감독관은 기업주의 대리인이 아니다”며 “고소 취하를 설득하기 전에 체임부터 받아내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임금 지급 약속을 받고 고소를 취하한 근로자가 돈을 못 받은 경우엔 법률구조공단의 무료 민사소송 제도를 이용하는 방법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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