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파업 참가 공무원 징계를 둘러싸고 울산광역시 북구청장과 울산시장이 벌인 소송의 선고일이었던 22일 대법원 대법정.
선고 직후 법원 내부의 관심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이용훈 대법원장)가 울산시장의 손을 들어준 판결 선고 결과나 지자체에 대한 국가의 감독권을 강화한 판결 의미가 아닌 다른 곳에 쏠렸다.
“이 판결에는 대법관 김영란, 대법관 박시환, 대법관 김지형, 대법관 이홍훈, 대법관 전수안의 반대 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됐으며…”
재판장이 주문(主文)의 이유를 낭독하자 법정에 있던 몇몇 사람의 머리 속엔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에도 그들은 한 색깔이네.’
한국일보 법조팀이 현 대법원 진용이 갖춰진 지난해 7월11일 대법관 인사 이후부터 최근까지 선고가 이뤄진 9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 등 4명은 다수와 소수(반대) 의견을 불문하고 모두 일치된 견해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연이어 9건에서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전원합의체는 1년에 평균 10건 안팎만을 선고한다.
이홍훈 대법관은 1건만 견해를 달리 했을 뿐 나머지 8건에서 앞서 4명의 대법관들과 의견을 같이 했다. 특히 전원일치 판결을 제외한 사건에서 대법관간 의견 일치 비율을 분석한 결과, 이 대법관은 나머지 대법관들에 비해 앞서 그룹의 대법관쪽에 판결 성향이 최대 4배 이상 기울어 있었다.
이는 남성 엘리트 법관 출신으로 충원돼 ‘보수의 철옹성’으로 불리던 대법원에서 이념과 성향의 분화(分化)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더 큰 관심은 같은 판결 성향을 보인 이들 소장 그룹이 과연 대법원에 얼마나 진보의 바람을 불어넣었는지 여부다. 일단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는 정치ㆍ이념 대립이 상존하는 헌법재판소와 달리 판결 내용을 기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가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실제로 9건의 전원합의체 사건 가운데 전공노 사건을 제외하곤 대부분 법리적 판단이 쟁점이었다.
하지만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이 있거나 여성들로서 최근에 대법원에 합류한 이 소장파 대법관들은 자신들의 색깔을 확실히 할 사건을 만나지 못했을 뿐 ‘소리 없는’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회통념을 뛰어넘는 고율의 이자 약정을 무효로 한 판결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에 무게를 두는 판결 성향은 앞으로 있을 대법원 판결 변화의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전원합의체에서 7대6, 8대5 판결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도 그 변화 중 하나다. 비록 소수 의견이었지만 전공노 파업을 둘러싼 광역자치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의 분쟁에서 이들은 파업 참여자 징계를 거부한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8대5로 갈린 이 사건에서 대법관들은 ‘반대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비판’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을 판결문에 동시에 기재하며 반박에 재반박을 거듭했다.
이들과 정 반대편에서 김황식 안대희 대법관이 같은 의견을 내는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전원일치 판결을 제외한 나머지 5건의 사건에서 두 대법관은 앞서 그룹과 한번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판결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법리를 앞세워 반대 전선을 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대법관 각자가 개별적 의견을 내는 대법원 체제상 일률적으로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선고 결과로 볼 때 이제 대법원은 5명의 소장 대법관과 이들의 반대편, 그리고 중도그룹 간 법리다툼 양상이 판결의 향방을 결정하는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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