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각종 현안에 대한 여론의 동향을 접하는 것은 이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론조사가 요즘처럼 빈번하게 이뤄진 것은 우리사회에서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짧은 시간동안 괄목할만한 변화이다.
공적영역에서 어떤 중요한 결정과 가치 배분을 앞두고 시민사회의 생각을 주목하고, 그것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지속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의 여론조사가 정말 제대로의 여론이나 민심을 반영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이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여론조사보도를 보면서, 조사의 목적이 갈수록 형식화, 파편화 하고 있으며 조사를 위한 조사의 흔적도 강하게 나타난다.
최종 담판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한미FTA협정에 대한 여론조사가 그런 사례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여론조사는 대부분 개방 찬성 또는 반대라는 원론적인 수준의 생각을 파악, 정리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FTA협정 체결이후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가지지 못한데 그 일차적 이유가 있다.
협정이 체결되면 중장기적으로 사회내의 ‘이익의 균형’ 또는 ‘손실의 균형’이 어떻게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냥 짐작하고 있을 뿐이다.
협상을 앞두고 정보공개를 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겠지만,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시민 각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여론조사는 제대로의 민심을 담을 수 없으며, 자칫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여론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선거결과를 전망하는 조사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70%를 상회하는 결과가 한동안 계속되고 있지만, 이런 수치가 12월 본선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범여권의 후보단일화 성사여부가 관건이겠지만, 역대 선거 결과는 1, 2위자 간에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지역, 연령, 미디어 변수가 그동안 일정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후보별 단순선호도조사는 민심의 큰 흐름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가 넘쳐 나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첫째, 정책결정자뿐 아니라 일반시민도 점차 여론조사결과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수치로 나타난 조사결과는 정당성을 얻게 돼 다른 대안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모색은 위축되고 있다. 둘째, 과학 또는 전문가의 몫을 여론조사로 대치하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좀 시간이 지난 이야기지만,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태는 합리적 정보에 기초하지 못한 개인의 의견, 집단적 여론이 가지는 취약성을 되돌아볼 계기였다.
셋째, 여론조사를 통해 집단의 의견은 지속적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실제 유권자 각 개인이 가지는 독특한 생각은 중시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여론조사대상으로 치부되면서 정작 중요한 정치과정에는 참여가 봉쇄돼 주변부에 머무는 일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넷째, 지금의 여론조사결과는 여론형성의 동태적, 구조적 특성은 파악하지 못한다.
심사숙고 된 여론과 그에 따른 여론조사를 중시하는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ing)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유권자 집단을 토의모임에 참석시켜 이들에게 토론과 전문가 질의응답이라는 공개적 심사숙고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게 한 뒤, 여론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다양한 입장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충분한 숙의과정을 거쳐 의견을 수렴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여론조사와는 구별되는 방식이다.
여론조사는 발언권이 약했던 시민의 목소리를 정치과정 전면에 내세우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그 결과는 복잡한 사회를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편리한 도구이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들이 충분한 관련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조사결과로 나타난 소수자의 생각은 배제해도 괜찮은 것인지, 감성적 요인에 의해 시민사회가 설득당한 것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손’이 여론의 방향을 왜곡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봐야 한다. 여론조사 과잉시대. 조사결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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