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지만 패자의 눈시울은 빨갛게 젖었다. 우승의 감격에 젖은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두 손을 허공에 치켜들었다. 반면 코트 반대편에 홀로 남은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현대캐피탈이 삼성화재를 꺾고 2006~07 프로배구 챔피언에 등극했다. 대회 2연패. 김호철 감독이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꼽은 권영민과 송인석은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땀이 흠뻑 배인 팔뚝에 불끈 솟은 핏줄은 현대캐피탈의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현대캐피탈이 2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벌어진 챔피언 결정(5전3선승제) 3차전에서 삼성화재에 3-2(25-21 20-25 25-27 25-14 15-12) 역전승을 거뒀다. 3연승을 거둔 현대캐피탈은 챔프전 MVP 숀 루니(30점)가 공격의 선봉에 나섰지만 삼성화재는 믿었던 용병 레안드로(26점)가 공격성공률 38.6%에 그쳐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세트점수 2-2 동점인 최종 5세트. 실업배구 시절을 포함해 겨울리그 통산 10회 우승에 도전한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패배를 직감했다. 무릎 통증에 시달린 ‘갈색 폭격기’ 신진식(34)과 종아리 경련에 이를 악물던 세터 최태웅(31)이 “도저히 아파서 못 뛰겠다”고 하소연했기 때문. 삼성화재 노장들의 투혼이 한계를 드러낸 5세트는 패기와 높이를 앞세운 현대캐피탈이 15-12로 가져갔다.
현대캐피탈의 우세를 점치면서도 “내기라면 삼성화재에 돈을 걸겠다”던 배구인들은 “현대캐피탈이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삼성화재는 지는 해다”고 입을 모았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장사는 없다”며 고개를 떨군 패장 신치용 감독은 “육체적인 고통을 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챔프전을 4,5차전까지 끌고 가지 못해 배구팬에게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센터진의 약점을 간파하고 챔프전 내내 ‘빠른 공격’을 주문해 예상 밖의 3연승을 거둔 김호철 감독은 “요놈들이 잘해준 덕에 우승했다”며 우승의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
불과 2년 전까지 “도저히 삼성화재를 이길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던 김호철 감독. 그는 그렇게도 원하던 삼성화재 격파를 두 시즌 연속 성공하자 “친구이자 경쟁자인 신치용 감독과 소주 한 잔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한편 여자부는 흥국생명이 현대건설을 3-1(25-19 17-25 24-26 20-26)로 따돌리고 1패 뒤 2연승을 달렸다. 우승에 단 1승만을 남겨둔 흥국생명은 오는 31일 오후 5시 수원에서 현대건설과 4차전을 갖는다.
천안=이상준기자 j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