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법조팀이 지난해 7월 이후 결정된 9건의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대법관별로 자신이 낸 의견에 대해 나머지 대법관들이 얼마나 동조했는지를 분석한 결과, 대법관 13명 중 유일하게 모두 다수의견 편에 섰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단연 1위였다.
대법관 전원일치 판결이 나온 4건을 제외하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던 5건만 분석해도 이 대법원장과 같은 의견을 낸 대법관이 평균적으로 가장 많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런 결과는 미국 연방대법원장이었던 윌리엄 렌퀴스트나 워렌 버거가 지나친 정치 편향으로 나머지 대법관들에게서 지지를 받지 못한 것과 비교된다”고 말했다.
모든 대법관이 전체 사건에서 이 대법원장의 의견과 일치했을 때를 1로 가정했을 때 이 대법원장은 평균 0.62였다. 이어 정통 법관 출신인 양승태 김능환 대법관이 0.6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물론 이 수치만으로 대법원장이 전원합의체에서 의견을 주도한 것인지, 재판 주재자로서 다수의견에 소극적으로 참여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대법관과의 의견 일치율이 높다는 것은 대법원장이 심리과정에서 다수파 위치에 있으며, 결과적으로 판결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법원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김영란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은 0.52~0.57에 머물러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나타났다.
김황식 안대희 대법관이 낸 의견에 대해 나머지 대법관들의 의견 일치율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0.4에 불과, 가장 소수파에 머물렀다.
40대와 변호사, 여성 판사 등이 속속 대법원에 입성하면서 대법원 판결에도 소리 없는 변화가 시작됐다. 최근 나온 판례들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6월 성(性)전환자의 호적 정정을 허가해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의 주심은 노동법 분야 전문가로 비(非)서울대 출신인 김지형 대법관이었다.
2월 사회통념을 넘어선 고율의 이자 약정은 무효이며, 심지어 이미 준 이자도 돌려 받을 수 있다는 판결 역시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다.
당시 “사채를 빌려주는 쪽 역시 대출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인데 개인간 합의가 이뤄져 정상 지급한 이자까지 돌려 받게 하는 건 지나치다”는 반대의견도 나왔지만, “고금리 사채에 신음하는 서민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에 묻혔다.
수사기관의 불법적인 임의동행에 제동을 건 판결(2006년 7월)도 여론의 박수를 받았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짧은 시간에 보수적 색채가 옅어지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려는 흐름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종전 대법원 구성과 차별성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 전원합의체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3개의 소부(小部)와 달리,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한다. 각 부 대법관 의견이 일치하지 않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또는 명령ㆍ규칙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함을 인정할 때 개최한다.
판결문에는 반대의견을 법관 실명과 함께 기재한다. 반대의견은 판결의 효력을 갖진 못하지만, 대법관이 교체되면 언제든 다수의견이 될 수 있어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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