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신혼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뒤늦게 찾아봤다.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다보니, 거 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인물이 안 좋으면 배경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제주도의 풍광이 좋지 않아서는 아니었고, 그게 다 어떤 우연 때문이었다. 우리가 제주도에 도착한 그날, 공교롭게도 제주도에서는 한미FTA 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수십 명의 농부들(머리띠를 한)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고, 그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전경들의 환영을 받으며 택시에 올라타야 했다.
가는 곳마다 '한미FTA결사반대'라는 노란 깃발을 보았고, 그 깃발들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어야했다. 어딜 가나 전경들이 있었고, 또 어딜 가나 구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전경들과 구호가, 우리 신혼여행 사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었다. 마치 FTA와 신혼여행을 갔다온 기분이었다.
후에, 아이가 태어나 우리 신혼여행 사진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제 부모가 한미FTA에 결사반대하여, 제주도까지 다녀온 것이라 생각할 거 같다. 그때, 아이는 제 부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할까, 부끄럽게 생각할까. 나는 지금 가만가만 그 협상을, 아이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대다수 침묵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를 투사로 만들지 말길 바라며.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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