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들이 정성껏 심고 가꾼 피붙이 같은 나무를 베어내려니….”
‘크릉크릉 부아앙.’ 매몰차게 돌아가는 전기톱날에 아름드리 굵은 잣나무가 허리가 잘린 채 하나 둘씩 맥없이 쓰러진다. 나뭇조각은 피인양 바람에 흩날린다. 울창하던 잣나무 숲은 어느새 허연 속살을 드러내며 황무지처럼 변해갔다.
27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의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국유시험림에서는 다 커야 1㎜도 안 되는 재선충(材線蟲)의 습격에 70년 묵은 높이 24m, 지름 30㎝짜리 잣나무들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시험림 안에서 재선충 감염 잣나무 2그루가 확인되면서 감염 의심이 있는 잣나무 집단 벌목에 나섰다.
“잎이 하늘로 향해 뻗는 건강한 잣나무와 달리 재선충에 감염되면 잎이 망가진 우산살처럼 처지게 됩니다.” 백을선(52) 산림생산기술연구소 소장의 말대로 감염이 의심되는 나무의 잎은 한 눈에 봐도 생기를 잃었다. 보통 감염 1주일 안에 잎이 힘없이 늘어지고 3주만에 완전히 시든다. 한 달이 지나면 파랗던 잎은 붉게 바뀐다.
“여기 또 있다.”감염 의심 나무가 다시 발견되자 직원들이 달려가 연구 시료용으로 나무의 일부를 조심스레 떼냈다. 이어 반경 20m안의 나무 50여 그루에 바로 전기톱을 들이댔다. 이주선(55) 연구소 주무관은 “매일 돌아보며 연구용으로 관리해 온 친자식 같은 나무들인데…. 차라리 어려운 이웃의 집 짓기 목재로라도 쓸 걸 그랬다”고 안타까워했다.
‘재선충 감염목 이동금지’ 팻말 뒤로 굴삭기 등 중장비 3대가 분주히 오갔다. 연구소 직원 등 20여명이 종일 벌목에 매달렸다. 전기톱은 쉴 새 없이 가동됐고, 잣나무들은 ‘쿵’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줄지어 쓰러져갔다. 서쪽으로 1.5㎞ 떨어진 포천시 소흘읍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까지 재선충이 확산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 소장은 “산림자원의 보고인 국립수목원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잣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로 경기 북부에서 만주까지 퍼져있어 재선충이 북쪽으로 올라가기 전에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베어낸 잣나무는 350그루가 넘었다. 앞으로 사나흘 안에 5헥타르(haㆍ1ha는 1만㎡)내 2,000여 그루를 모두 베어 잘게 부술 예정이다. 10톤 트럭 260대 분량으로 28일부터 시작되는 파쇄 작업에만 보름 걸린다. 28일에는 40여명이 추가 투입된다.
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는 거의 100% 폐사한다. 잣나무 재선충의 매개 벌레인 북방수염하늘소는 몸에 1만5,000여 마리의 재선충을 달고 다니는데, 재선충은 나무 안에서 물 흐름을 막아 나무를 말려 죽인다. 백 소장은 “아직 애벌레인 하늘소가 날개가 달린 어른벌레로 자라 사방에 재선충을 뿌리기 전에 막아내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남양주=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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