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의회건물에서 생애 대부분을 반목으로 지내온 두 정치인이 처음으로 만났다. 회동 내내 두 사람은 떨어져 앉은 채 악수도 나누지 않고 서로를 외면하려 듯 했다. 그러나 영국 언론들은 이런 만남을 세기적 사건에 비유하며 북아일랜드 평화의 신기원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만남의 주인공은 민주연합당(DUP)의 이안 페이슬리 당수와 신페인당의 제리 애덤스 당수. 두 정치인의 이력은 북아일랜드의 현대사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다.
원로 정치인인 페이슬리는 신교도 장로, 애덤스는 구교도로 신페인당과 연계된 무장투쟁 조직 아일랜드공화군(IRA) 사령관을 지냈다. 특히 페이슬리는 구교도측과 대화를 거부하며 당내 강경 노선을 주도해왔다. 얼마 전까지 그의 딸 론다 마저 신페인당을 향해 ‘총잡이, 갱단’이란 비난을 퍼부었을 정도다.
북아일랜드에서 신교는 영국통치 존속을, 구교인 가톨릭계는 독립과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주장하면서 양측은 종교를 떠나 정치적으로 격렬히 대립해왔다. 이 반목의 역사를 이끌어온 두 사람이 이제 화해를 이끄는 주인공으로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이날 회동에서 두 사람은 2002년 IRA 활동을 둘러싼 갈등으로 붕괴된 자치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예정대로 5월 8일 자치정부가 출범하면 페이슬리는 제1장관에, 신페인당 평화협상 대표를 역임한 마틴 맥기네스는 제1부장관을 맡게 된다. 3월 자치의회 선거에서 DUP는 전체의석 108석 가운데 36석을, 신페인당은 28석을 얻어 각기 제1, 2당으로 부상했다.
합의 이후 페이슬리는 “더 안전하고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공포와 비극이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덤스도 “수세기 동안 갈등, 상처 비극으로 점철된 아일랜드에서 이번 대화와 합의는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수개월간 페이슬리에게 권력분점 합의를 종용해온 영국 아일랜드 미국 정부도 환영논평을 냈다. 26일까지 자치정부 구성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북아일랜드 의회해산과 지속적인 직접통치’ 카드로 압박해온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지난 10년간 모든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비록 정부구성에 합의는 했지만 산적한 현안 처리 과정에서 양측간 이견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영국 언론들은 “두 사람이 마주한 것 자체가 3,700여 희생자를 낸 그간의 갈등이 끝나고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는 메시지”라고 전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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