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진눈개비가 내리던 밤, 긴급구조 상황실 스피커가 울렸다. 애절한 목소리의 주인은 할머니가 분명했다. 몹시 춥지만 무릎관절염 때문에 움직일 수 없다는 사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리 고정대와 구급약을 준비하고 사이렌을 울렸다. 발신음을 추적하며 현장에 도착한 119요원들은 홀로 누워있던 할머니를 병원에 옮기고 다시 눈길로 나섰다. “감사합니다.” 3평 남짓한 컨테이너 한쪽 구석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깊은 주름살 속 눈동자, 할머니가 손에 꼭 쥐어 그에게 내밀어 보였던 ‘토끼모양의 장난감’이 잊혀지지 않았다.
■ 경기 지역 독거노인을 위해 ‘안심폰(安心phone)’이 생긴 것은 1년 전의 일이다. SK텔레콤이 주민이 많고 지역이 넓지만 응급의료시스템이 미흡한 경기도 지역을 우선 대상으로 응급휴대폰을 무료로 보급키로 한 것이다. 경기도가 일정 예산을 지원하고 바이텍씨스템이란 중소업체가 기독교 봉사정신으로 보급을 담당하고 있다.
독거노인과 나홀로어린이, 치매환자 등을 위해 2만5,000대를 마련해 지난해 경기도 외딴 곳에 우선 1만5,000대를 공급했다. 충남 천안시에도 100대를 보급했고, 서울 동대문소방서 관할지역에 119대를 공급할 계획이다.
■ ‘안심폰’은 조작이 간단하고 비용이 무료인 것은 물론 119구조대와 상호통화도 되며, 위치추적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비상전화다. 기존 목걸이형 페이징(일명 삐삐)이 일방적 발신만 가능해 119요원들이 헛걸음하기가 일쑤인 단점을 없앴다.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된다지만 갑자기 정신적ㆍ육체적 위기에 처한 노인들이 스스로 휴대폰을 사용할 여유가 있겠는가. 안심폰엔 커다란 119단추 외에 친지를 부르는 5개의 비상단추도 있다.
■ 최근 서울시내에 ‘U-안심폰’이라는 것이 생겼다. 소방서마다 구청마다 파출소마다 ‘신청하세요’라는 플래카드를 걸어 놓았다. 휴대폰이나 유선전화를 통해 환자(혹 예상되는 환자)의 의료사항을 신고해 놓으면 유사시 응급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취지다. 좋은 시책이지만 지나치게 행정편의적이어서 실효가 적다.
각 파출소에 떨어진 1,000명 확보 지시 때문에 부작용까지 생긴다고 한다. 날씨가 풀리면서 외출과 활동이 잦아지는 시기다. 노인이든 어린이든 독거와 나홀로의 상황이 많아질 것이다. ‘SK_바이텍 안심폰’이 더 확산될 수는 없을까.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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