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LG배에서 우승, 대만에서 활동하는 기사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타이틀을 따낸 저우쥔신(周俊勳 ․ 27)의 오른쪽 얼굴은 커다란 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것이라는데 너무 커서 다소 흉측할 정도다. 어릴 때 저우쥔신은 이 반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심한 놀림을 당해 학교에도 가기 싫어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둑을 배우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았고 결국 모든 역경을 딛고 세계 제1인자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흔치 않은 성공담이기도 하다. 최근 대만 언론들이 보도한 '저우쥔신 스토리'를 요약, 소개한다.
'붉은 얼굴의 바둑왕(紅面棋王)'저우쥔신(周俊勳). 그는 오른쪽 얼굴에 붉은 꽃이 핀 채 태어났다. 어린 시절 저우에게 붉은 얼굴은 저주였다.
초등학교에 처음 간 날, 같은 반 친구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귀신이 왔다." 이후 듣기에도 섬뜩한 '마귀' '음양 얼굴' '흑백 낭군''아수라 백작'이란 별명이 줄곧 따라다녔다. 어린 저우는 어느덧 사람들을 피해 숨는 것을 배우게 됐다.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 문을 닫아건 것이다.
그러다가 바둑을 만났다. 그 경위가 매우 드라마틱하다. 유단자급 실력으로 소문난 바둑광인 아버지가 어느 날 바둑 모임에서 일곱 살 난 꼬마에게 바둑을 졌다.(이 바둑 신동은 훗날 일본으로 건너가 정상급 기사로 성장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장쉬다) 아들 같은 꼬마에게 참패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동갑인 저우에게 바둑을 배우라고 했다.
아들이 자기 대신 복수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일본의 사까다 에이오 기보집 12권을 사서 아들에게 주고 날마다 기보를 놓아보라고 시켰고 엄마가 감독관 역할을 했다.
이때부터 저우는 바둑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그동안 홀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던 그는 금방 하얗고 검은 바둑의 세계로 깊이 빠져 들었다.
사람들을 무서워했고 학교 가기 싫어했던 저우는 날마다 집에서 즐겁게 바둑돌을 두드렸다. 뛰어난 집중력과 놀라운 기억력으로 저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판의 기보를 몽땅 외워 버렸다. 아마도 그가 친구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더라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저우는 또 어렸을 때 옆 사람이 놀리고 비웃으면 무조건 운동장을 달려 끓어오르는 미움을 털어냈다고 한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 보니 아홉 살에는 400미터 트랙을 70바퀴나 돌 수 있게 됐다. 이 왕성한 체력이 훗날 승부의 세계에서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 됐다.
당시 대만의 바둑 꿈나무들은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저우는 가정 형편 때문에 비용이 덜 드는 중국으로 가서 열세 살에 프로가 됐다.
공교롭게도 이번 LG배 결승전 상대였던 후야오위가 입단 동기라고 한다. 입단 후 대만에 돌아온 저우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바둑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단숨에 '명인'과 '국수'를 따내 대만의 1인자로 부상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붉은 얼굴의 어린이 바둑왕(紅面小棋王)'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이야기가 실리기도 했다. 이후 명인위는 지금까지 13연패를 기록 중이다.
수년전 어떤 사람이 저우에게 레이저 수술로 반점을 없애라고 권했다. 그러나 저우는 "고르바초프의 머리에도 커다란 반점이 있다. 그러나 그는 소련의 제1인자가 됐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반점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가"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저우에게 붉은 얼굴은 저주였다. 그러나 이를 당당하게 딛고 일어선 지금, 이제 그것은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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