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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한나라당의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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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한나라당의 '가지 않은 길'

입력
2007.03.2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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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정부 국무장관을 지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에 "네오콘의 영향으로 '가지 않은 길'을 이제야 옳게 선택했다"고 논평했다.

올브라이트의 발언 원문을 찾지 못했으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떠올렸다. 피천득 선생이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고 옮긴 그 시다.

프로스트는 1916년 봄, 영국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의 초대로 영국 글로스터셔에 머물며 노란 수선화가 카펫처럼 깔린 숲 속을 함께 거닐 곤 했다.

토머스는 산책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을 버릇처럼 후회했고, 프로스트는 그에 빗대 인생을 성찰하는 시를 썼다고 한다. 삶에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에 집착하지 않고 인생을 관조하는 자세를 읊은 것으로 흔히 풀이한다.

● 대북정책 '인내와 실천'이 중요

조금 달리, 갈림길에서 마냥 망설이기보다 한쪽을 선택한 뒤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로 새기는 이들도 있다. 올브라이트도 북핵 해결에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역시 프로스트의 시를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다.

우리의 국가적 안녕이 걸린 북핵 문제를 한갓진 산책 길, 인생 행로에 빗댄 것이 못마땅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보다 평화 만들기가 훨씬 어렵고, 그게 대부분 인간의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교훈은 소박한 서정시가 곧 국가전략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이치를 일깨운다.

북한에 대해 부시 행정부 못지않게 완고한 한나라당이 그 '가지 않은 길'을 놓고 고민에 빠진 모양이다. 대북정책 태스크포스까지 만들어, 북미 관계 진전에 맞춰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수용하는 등의 정책 변경을 궁리하고 있다고 한다. 모호한 구상만 보도된 것으로 미뤄 아직은 변화 대세가 어디로 흘러갈지 헤아리며 민심을 살피고 있는 듯 하다.

다만 북미 관계 변화에 맞춰 북한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얘기부터 올바른 현실 인식과 거리 멀다. 우리사회 수구세력은 지금껏 내심 북한의 실체를 부정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집권을 노리는 최대 야당이 이제와 '실체 인정' 따위를 논한다면 국제사회가 먼저 웃을 일이다. 수구 언론의 망발로 듣고 싶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여전히 "핵무기 폐기 없는 포용은 안 된다"는 보수논리에 얽매이는 모습은 어리석게 보인다. 미국은 겉으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핵 폐기 목표를 내세우지만, 실제 정책 변경의 바탕은 핵 보유 현실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핵 무기를 갖기 전에는 머리부터 누를 수 있지만, 일단 핵을 보유한 나라는 마주 보고 얘기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평양 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췄다"는 지적이 나오는 현실부터 바로 봐야 한다.

이런 모든 변화가 미국이 주도하는 동북아 전략질서 재편에서 비롯된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선 필승을 다짐해야 할 때에 수구세력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변화에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설 듯 하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이 보수 우파를 선호하는 근본은 나라 안팎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는 역량을 기대하기 때문이라는 상식을 되새기기 바란다.

● '좌파 실패' 넘어서는 용기 보여야

좌파적 이상을 치켜든 정부가 실패한 것은 주변 질서의 혼돈을 헤쳐나갈 능력도 처지도 못되면서 맹목적으로 나라안 혼란만 부추긴 때문이다.

미국과 주변 강국들이 다투며 만드는 새로운 질서가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스스로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변화 대세에 적응하는 국가적 진로를 앞장서 제시, 국민을 안심시키고 설득하는 성의와 용기와 능력이 없다면 우파를 자처하고 자랑할 게 못 된다.

그 '가지 않은 길'이 이미 누군가 밟은 것이기에 선뜻 발을 내딛는 것을 꺼릴 수도 있겠다. 키신저의 지혜를 다시 빌린다. 그는 올브라이트의 논평에 댓 글을 달 듯이 말했다. "길은 애초 없다. 걸어감으로써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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