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처럼 연줄 찾다가는'망신'
지난해말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 직원들은 한동안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다녀야 했다. 대표적인 외국기업 7곳이 중국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공무원 자녀를 취직 시킨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는 사실이 중국 언론에 대서특필된 것. 일각에선 “아직도 ‘관시(關係)’에 의지해 사업을 하려는 기업들은 중국에서 추방해야 한다”며 불매운동까지 제의했다.
전자부품 업체 A사는 지난해 “저렴하게 토지를 제공해 주겠다”는 산둥성 칭다오시 정부의 핵심 관계자 말을 믿고 투자했다가 큰 낭패를 봤다.
올해 초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의 무분별한 외국기업 유치 및 혜택 제공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공장을 세울 수 없게 된 것이다. A사 관계자는 “칭다오시 정부와 산둥성 정부에 계속 건의를 하고 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며 “비슷한 처지의 기업이 10곳도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관시는 잊어라
최근 중국 비즈니스에서 ‘관시(關係)’ 대신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뜻하는 ‘GR’(Government Relationship)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각종 법률과 제도가 완비되면서 그 동안 중국 사업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관시보다 GR이 비즈니스 성패의 변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의 재량권이 컸을 때 위력을 발휘했던 관시가 이제 그 효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GR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코닥은 최근 GR을 활용해 역전드라마를 연출했다. 코닥은 중국 사진 필름 기업들이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도록 기술 및 자금 지원을 해달라는 중국 정부의 제안에 적극 수용, 결국 3년간 독점 판매권을 따냈다.
반면 한때 시장점유율 70%를 넘었던 후지필름은 시장에서 퇴출됐다.
중국 정부가 직접판매 입법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암웨이도 전세계의 지사망을 동원해 자료를 찾은 뒤 이를 중국 정부에 제시해 사업을 더 키웠다.
SK네트웍스도 GR 성공 사례이다. SK네트웍스는 지난달 중국 선양에서 복합 주유소를 개장 한 뒤 엑손모빌, BP, 쉘 등 전세계 석유 메이저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기존 업체들은 모두 중국 기업들과 지분합작 형식으로 주유소 사업에 진출한 데 반해, SK네트웍스는 100% 단독 지분으로 투자하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중국 당국이 주유소 사업과 관련해 외자기업에게 100% 지분을 갖도록 허용한 것은 전무후무하다.
열쇠는 ‘윈윈 전략’에 있었다. SK네트웍스는 중국 선양시가 도로와 터미널 등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 고심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 선양시가 경제개발계획 초안을 만들고 구체적인 실행에 옮기는 과정부터 발벗고 나서 도왔다.
특히 1970년대 우리 정부가 추진한 경제개발계획 등을 사례로 내 놓았다. 이러한 SK네트웍스의 노력에 선양시 정부는 SK네트웍스가 단독으로 주유소 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화답한 것.
SK네트웍스 관계자는 “중국 정부를 파트너로 삼아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사업을 찾은 게 주효했다”며 “선양시 정부는 물론 최근엔 단둥을 비롯한 다른 지방정부까지 경제개발 관련 자료 및 협조 요청을 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박한진 코트라 상하이무역관 차장은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 아직도 관시에 의존해 사업을 하려다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상하이에서는 아예 한국 기업인 20여명을 요주의 관리대상으로 정해 감시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의지가 강한 만큼 이제 관시는 잊는 게 현명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을 M&A 하라
정부 정책의 파트너가 되는 것도 효과적인 중국 진출 전략으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인수ㆍ합병(M&A)에 대한 관심을 키워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10여년 간의 대규모 설비 투자로 공급 과잉에 직면한 중국 정부는 최근에는 신규 투자보다는 기존 기업 간의 M&A를 장려하고 있다.
은종학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중국에 진출한 다른 나라 외자 기업들이 성장 동력 확보와 미래 경쟁자의 사전예방 차원에서 중국 기업 M&A에 적극적이었던 반면 우리 기업들은 다소 미온적이었다”며 “앞으로 중국 M&A 시장이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우리 기업들도 M&A를 중국 진출 전략으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 中파트너 되려면 마음부터 잡아라
“중국 정부의 파트너가 되려면 먼저 사회공헌활동으로 중국인의 마음부터 잡아라.”
중국 비즈니스에서 관시(關係)보다 ‘정부와의 파트너 관계’(GR)가 더 중요해지면서 이를 위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도 확대되고 있다.
새롭게 변한 중국의 비즈니스 환경에선 단순히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기업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일심일촌’(一心一村) 운동으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삼성 중국본부 산하의 38개 법인과 지사가 중국 농촌 마을과 일대일 자매 결연을 맺고 초등학교 지원, 농수산물 구매, 빈곤가정 방문 등의 각종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 삼성 관계자는 “중국인의 사랑과 지지가 없이는 중국 내 사업이 발전할 수 없다”며 “한ㆍ중이 공동 번영하기 위한 상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LG전자도 중국인의 정서에 맞는 사회공헌 활동을 다각적으로 전개해 ‘중에 진출 외국 가전업체 중 가장 성공한 기업’, ‘외국기업 가운데 가장 친근감이 가는 기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03년 중국에 사스(SARS)가 덮쳐 많은 외국 기업들이 빠져나갈 때도 LG전자는 ‘사스 퇴치’를 외치며 중국사랑 캠페인 ‘아이러브차이나(I Love China), 아이자이중꿔(愛在中國)’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중국 현지기업들도 생각하지 못한 이 캠페인은 중국인의 마음속에 공익기업으로서의 LG 이미지를 각인 시켰다.
LG전자는 2002년부터 13곳의 ‘LG 희망소학교’에 TV와 개인컴퓨터(PC) 등을 지원하고 있다. 난징에서는 ‘사랑의 병원’을 설치, 빈곤층 유아 선천성 상구순열 환자들에게 무료 시술도 해줬다.
SK㈜는 중국 신장성 우루무치시에 ‘SK애심소학교’를 건립, 빈곤층 어린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SK그룹은 또 무료 의료봉사 활동 등을 펴는 것 외에도 단독 후원 퀴즈프로그램으로 ‘SK장웬방’(狀元榜)을 제작, 베이징과 상하이 등 전국 7개 지역에 방영하고 있다. SK케미칼도 지난해 연말 중국의 세르첸 티베트 영어중학교에 PC 60대 기증하는 등 중국의 소수 민족학교를 돕는 활동을 폈다.
현대ㆍ기아차도 1992년부터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옌지에서 자동차 정비기술 등을 교육하는 ‘기술훈련원’을 운영하고 있다. 기아차도 지난해부터 매월 1인당 100위안씩 모금, 공장 주변 양로원과 고아원을 돕고 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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