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스트인가, 혁명가인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겐 이런 질문이 곧잘 따라붙는다. 1998년 말 44세에 대권을 잡은 차베스가 8년간 걸어온 행적이 그만큼 격정적이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우선, 밑바닥 인생이 다수인 메스티소(원주민 인디오와 스페인 등 백인 혼혈) 대통령이 없는 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개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민중을 위한 혁명가란 기대를 가지게 된다.
반면 군사 쿠테타까지 감행했던 군 엘리트 출신인 그가 비상입법권에 따라 무소불위의 권력까지 휘두를 수 있다는 대목에선 과거 중남미를 괴롭혔던 페론이즘이나 장기독재의 싹을 떠올리게 된다.
만약 설문조사를 한다면 둘 중에서 포퓰리스트란 대답이 더 많을 것 같다. 항목을 확장하면 가장 많은 응답은 '모르겠다' 내지 '관심없음'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달라지고 있다. 국내에서 차베스를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를 눈에 가시처럼 미워하는 미국 일각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최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중남미 투어를 겨냥한 차베스의 요란한 맞짱투어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여론전에서 승리했다는 피상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에선 부시 정권의 한계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역사의 종언> 저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2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교육과 의료를 포함한 사회복지 서비스가 주된 인기 비결"이라며 미국은 빈민구호 외교를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의>
차베스의 인기가 미국과 가진 자를 향한 빈곤층의 분노에 편승한 신기루가 아니라 나름의 실체를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차베스를 인터뷰한 뉴스진행자 바바라 월터스도 13일 abc방송에서 "차베스는 민중을 위해 열성적으로 각종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열풍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차베스에 대한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고, 인터넷에선 그의 개혁 일대기를 그린 단편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또 일부 진보층은 21세기 신사회주의 건설을 표방한 그의 거창한 정책을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로 거론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양극화의 주범으로 비판하면서도 정작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해 갑갑증을 느끼고 있는 진보진영의 지적탐험이며, 참여정부 추락과 함께 낙인 찍힌 '진보는 무능하다'는 악평을 떨쳐 버리려는 자구책이기도 하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최근 출간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쓰다> 는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까지 시도한다. 공통점이 많은 두 대통령은 척박한 여건에서 출발하지만 차베스는 좌파 정책을 또박또박 펼친 결과, 60%의 압도적인 지지로 3선에 성공해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라는 신지평을 연 반면 노 대통령은 '좌파 신자유주의' 같은 엉터리 절충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베네수엘라>
그러면 차베스의 실체는 뭘까. 기자는 판단을 유보한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거창한 구호에 취해 학살이란 만행을 놓쳤듯이 진행중인 혁명을 제대로 파악하기에는 이르다.
또한 세계인의 반감을 사고 있는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와 국제적 고유가에 따른 호황 같은 외적 요인도 차베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포퓰리스트와 혁명가는 똑같이 대중의 힘을 구애하는 사람이란 점에서 뚝 자르듯 구별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차베스가 새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모델이 됐으면 하는 기대는 해본다.
김경철 국제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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