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통합 작업을 자극하려는 정치권 밖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진보적 종교계 인사 모임인 '민족 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가 범여권 대선 예비후보들을 한데 모아 '대통합 원탁회의'(가칭)를 띄울 방침이고, 진보계 시민ㆍ사회단체 활동가 모임인 '창조한국 미래구상'도 공개토론회 형태의 연석회의를 추진하고 있다.
두 회의는 취지나 지향점이 많이 겹친다. 원탁회의는 "정치권 스스로 새 판을 짜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드는 데 사회원로가 직접 나서는 것"이라는 관계자의 말처럼 범여권 통합을 촉진하려는 장치다. 또 연석회의가 표방한 '진보개혁 진영의 연대 및 후보 단일화'도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민주화 20주년을 맞은 지금도 '범여권 통합'이라는 현실정치적 구호가 두터운 사회운동적 의미를 띤다는 전제에 의문을 느낀다.
시민ㆍ사회 운동이 정치지형과 완전히 별개일 수야 없지만, 정치권 스스로 내부의 이해타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문제에 시민ㆍ사회세력이 직접 뛰어들 일은 아니다. 특히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수구ㆍ보수세력'과 대칭점에 서는 '민주ㆍ평화ㆍ개혁세력'의 결집을 외침으로써 시대착오적 독선까지 드러냈다.
진보적 종교계나 시민ㆍ사회단체는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당시는 정의의 관념이 어디서 싹트든 정치적 장벽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실현을 꿈꿀 수 없던 시대였고, 명칭과 모양은 달랐지만 모든 진보적 사회운동은 정치운동 색채를 띠었다.
그런 시대는 갔다. 그런데도 사회 곳곳에는 아직 정의의 관념과 충돌하는 부조리가 숱하다. 종교나 시민ㆍ사회운동 내부의 개혁 등 작고도 힘든 과제가 즐비하다. 또 이런 과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권의 이념ㆍ정책이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경험칙도 마련됐다.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해방 직후를 연상시키는 퇴행적 어감의 원탁회의 등에 기대는 자체가 인식의 보수성에 다름 아니다. 이런 변칙에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반색을 하는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이야 두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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