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와 관광자원 보호 차원에서 귀사의 모래 채취 신청은 더 이상 허가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평판유리 제조업체 H사 이 모 사장은 지난 연말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 시정부로부터 날벼락과 같은 통지를 받았다. 투자만 해 주면 땅도 무상 제공하고 세금도 감면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2002년 중국에 공장을 지은 이 사장은 모래 채취가 금지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동안 임금이 2배나 올라 경영난에 허덕이던 H사는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날린 채 중국공장을 닫기로 했다.
중국경제가 다시 한 번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개혁ㆍ개방 정책을 표방(1978년)한 지 한 세대가 가까워지면서 종전의 양적 성장과는 다른 질적인 변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양질전화'(量質轉化)이다. 사유 재산권을 인정하는 '물권법'의 통과, 친환경 정책 강화, 외국인 투자의 옥석 가르기는 이전 중국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신(新)중국경제의 모습이다.
'물권법'은 신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물권법 통과는 개혁ㆍ개방 이후 중국 인민들이 상당한 재산을 축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집과 자동차를 소유하고 '자본시장의 꽃'이라는 주식시장에도 참여하고 있는 인민들의 부(富)를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썬쟈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물권법 이전의 중국과 물권법 이후의 중국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폴크스바겐과 중국 상하이차의 합작사인 상하이따중(上海大衆)이 중국 정부의 자동차 환경 마크를 획득하지 못해 공공 기관 납품을 못하게 된 것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폴크스바겐은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자동차 업체로 막강한 '관시'(關係)를 발휘했음에도 결국 새로운 법과 제도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최근 180도 바뀌었다. '쥐'(경제개발)만 잡을 수 있다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하지 않겠다던 중국이 이젠 깨끗하고 세련된 고양이(친환경ㆍ 첨단 기업)만 선별해서 받는 '녹묘(綠猫) 경제'를 추진하고 있다. 1조달러가 넘는 풍부한 외환보유액이 가장 큰 배경이다.
싼 임금, 공짜 땅, 세금 혜택 등의 메리트도 더 이상 없어지고 있다. 임금은 급등하면서도 기업들은 오히려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진출한 중소기업들이 이를 못이겨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는 탈(脫)중국 행렬이 확산되고 있다.
산둥성 옌타이에서 스피커를 생산해온 E사는 인력난과 증치세(부가세) 환급 폐지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해 최근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겼다. 일부 기업들은 품질안정을 위해 국내로 유턴하고 있다.
중국의 '녹묘 정책'은 새로운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거대한 소비 시장'으로 부상하며, 서비스 및 유통 산업들은 호황을 맞고 있다.
정상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글로벌 스탠더드까지 받아들이면서 경제강국으로 도약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박한진 KOTRA 상하이무역관 차장도 "중국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경쟁자보다는 파트너의 관점에서 함께 윈-윈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상하이=안형영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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