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짤한 통영의 바다 냄새를 맡으며, 줄지어 선 충무김밥집을 지나 동백꽃, 목련꽃과 함께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면 남망산 중턱에 자리한 통영시민문회회관에 닿는다.
23일 오후. 통영 출신의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기리기 위한 제6회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 공연을 앞둔 통영시민문화회관은 화려한 조명을 저녁 바다로 쏘아보내고 있었다.
개막 공연을 맡은 미국의 현대음악 전문 현악4중주단 크로노스 콰르텟은 한국, 중국, 인도 음악과의 결합을 통해 올해 음악제의 테마인 ‘만남’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도희 작곡의 <시나위> 초연을 함께 한 관객들은 시작을 알린 가벼운 장구 소리부터 마지막 징의 긴 여운까지 빠짐없이 즐겼다. 크로노스 콰르텟은 중국의 비파 연주자 우만과 함께 라일리의 <마법의 첨단> , 중국 민속음악 <나무 아미다> , 인도 영화음악 작곡가 부르만의 <메부바 메부바> 를 이어갔다. 메부바> 나무> 마법의> 시나위>
2부를 장식한 중국 작곡가 탄둔의 <고스트 오페라> 는 중국의 그림자극에서 영감을 얻은 퍼포먼스였다. 무대를 가로지른 긴 흰색 종이의 펄럭임과 물 소리, 맨발의 연주자들이 두드리는 돌과 금속 소리가 현악4중주와 어우러져 기술의 진보로 훼손된 인간의 숭고함을 강렬하게 표현했다. 고스트>
크로노스 콰르텟이 앙코르곡으로 지미 핸드릭스의 'Purple Haze'를 연주하자 관객들은 마치 록 콘서트에 온 듯 환호성을 질렀다. 조명이 다시 켜진 뒤에도 관객들은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고스트 오페라> 에 나온 “야우~ 야우~”하는 귀신을 부르는 외침소리를 따라 하며 극장을 나섰다. 고스트>
크로노스 콰르텟의 리더인 데이비드 해링턴(바이올린)은 공연 후 “80년대에 베를린에서 윤이상 선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의 고향에서 연주를 해 의미가 깊다. 특히 청중의 높은 수준에 놀랐다”고 말했다.
또 “오늘 공연에서 중국 악기인 비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는데 한국 악기에는 관심이 없느냐”고 질문하자 “26일 국립국악박물관을 방문한다”고 대답해 이들의 공연에 한국 악기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29일까지 계속되는 통영국제음악제는 해링턴이 이날 입은 셔츠 색깔처럼 알록달록하다.
현대음악 뿐 아니라, 고음악계의 거장 조르디 사발, 크로스오버 음악가 클로드 볼링,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임동민 등이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장르를 들려준다. 예년에 비해 한층 대중성을 더한 느낌이다.
덕분에 티켓 판매율은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지만, 현대음악의 메카를 표방한 당초 취지가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또 참가 단체 대부분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하기 때문에 윤이상의 작품을 하나씩 연주하는 것 이외에 통영만의 뚜렷한 색깔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김승근 이사는 “관객이 없는 행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즐길 수 있는 것과 공부할 수 있는 것을 적절히 안배하려 했다”면서 “그렇지만 이도희, 정일련, 홍성지, 신나라 등 한국 작곡가들에게 위촉한 작품을 초연함으로써 새로운 윤이상을 찾는다는 당초 취지는 충분히 살렸다”고 설명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조만간 외국인 예술감독을 영입한다. 또 윤이상 탄생 100주년인 2017년을 목표로 전용 음악당 건립도 추진 중이다.
통영=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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