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지배한 성공 기업들이 왜 그 자리를 계속 지키지 못하고 결국은 쇠락하고 마는 걸까? 아마도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에서 제시한 ‘훌륭한 경영 전략’들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
‘경영학계의 아이슈타인’으로 불리는 클래이톤 크리스텐슨 HBS 교수는 최근 한화그룹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때 잘 나가던 기업들이 결국 새로운 경쟁자에게 시장을 빼앗기는 것은 세계적 명성의 경영대학원과 컨설팅 회사가 가르쳐 준 전략대로 수익성만 추구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미국 자동차 시장의 경우를 보자. 처음 미국 시장에 진입할 때 도요타는 소형차로 시작했다. 소형차는 시장도 작았고 이익률도 낮아 미국 업체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카테고리였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 업체는 대신 시장도 크고 이익률도 높은 중ㆍ대형차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셈.
그러나 도요타는 소형차에서 그치지 않고 점차 중ㆍ대형차 시장에도 진출했다. 미국 자동차사들은 이번에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옮겨갔다. SUV의 수익률이 중ㆍ대형차보다 높았던 만큼 미국 업체들로서는 자연스런 길이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이후 SUV 시장까지 도전장을 내게 됐고, 결국 시장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아무리 저가 시장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소비하지 않던 소비자를 소비하게 만든다면 도전자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기존 시장의 리더가 탐내지 않는 곳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현대자동차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도요타가 미국 자동차 업체를 따라잡았듯이 이번에는 현대차가 다시 도요타를 추격하고 있다는 것. 문제는 현대차의 경우 시장에서 리더로 자리잡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는데, 벌써부터 중국 자동차 회사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한국에 대한 많은 걱정을 얘기했다. 사실 크리스텐슨 교수는 한국을 잘 아는 인물이다. 미국 브리그햄 영 대학을 나와 옥스포드대학과 HBS에서 석사 학위를 딴 그는 1970년대 초반 몰몬교 선교사로 한국에서 2년동안 생활했다. 어느 정도 한국말도 하고, ‘구자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저가 시장에서 시작됐던 일본 기업의 도전은 어느새 미국과 유럽의 선진 기업들을 따라잡았지만 이후 일본은 10년 이상 장기 침체에 빠졌다”며 “이번에는 한국이 그러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만도 한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대만 사람들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명함과 앞으로 자신이 창업할 회사의 명함을 함께 갖고 다닐 정도로 기업가 정신이 투철해 걱정이 안 된다”며 “반면 한국의 구조는 벤처캐피탈이 취약하고 노동 시장도 경직됐던 일본과 매우 비슷한 데다가 재벌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결책은 없는 걸까. 크리스텐슨 교수는 새로운 도전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s)을 통해 전혀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사용했기 때문인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살아 남으려면 기존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른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모멘텀을 찾아내란 얘기이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국 경제를 일본과 중국에 낀 샌드위치 신세로 표현한 것은 지금 위기의 본질을 꿰뚫은 것”이라며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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