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독도서관 앞에 있는 PKM갤러리가 덴마크 출신 작가 올라푸르 엘리아손(40)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독일의 경제 전문지 <카피탈> 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생존 미술 작가 100인 명단에서 늘 10위 안에 드는 작가다. 카피탈>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덴마크를 대표한 그는 그해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서 거울로 덮은 커다란 방에 인공태양을 설치하고 안개를 채운 <날씨 프로젝트> 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관객이 거닐면서 빛을 쬐고 드러누워 일광욕도 할 수 있게 만든 아름답고 놀라운 이 작품으로 그는 스타가 됐다. 날씨>
덴마크에서 태어나 얼음과 호수의 나라 아이슬란드에서 자란 이 작가는 빛, 색채, 물, 온도, 날씨, 파장 등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탐구해 작품을 만들어왔다.
조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영역을 누비는 그의 작업은 직접 실험하고 관찰해서 뽑아낸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아마추어 과학자를 연상시키는 방식이다. 물리학자들이 자연 법칙이나 실험 결과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딱딱한 수학식이나 그래프가 감추고 있는 아름다운 비밀을 그는 멋진 미술작품으로 눈 앞에 펼쳐 보인다.
PKM갤러리의 이번 전시에는 그를 유명하게 만든 대형 설치 작품들은 빠졌다. 전시 공간이 작아서다. 대신 드로잉, 조각, 사진, 소규모 평면 설치 등 12점을 가져왔다.
규모는 작지만 그가 해온 작업의 본질을 이해하기에 좋은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엘리아손의 작품세계 전모를 한국에서 만나려면 2009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준비 중이다. 그 전에 올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MOMA)을 시작으로 내년 뉴욕 MOMA, 댈러스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미국 순회전이 잡혀 있다.
갤러리 현관을 들어서면 사방의 흰 벽을 따라 펼쳐진 색채의 띠 <컬러 스펙트럼> 시리즈가 관객을 맞는다.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이 뿜어내는 일곱 빛깔 무지개 안에 숨어있는 다양한 색채를 48장의 프린트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햇빛이 품은 색채는 실은 수백 만 가지라고 한다. 컬러>
보라색만 해도 이 작품은 8~10가지의 색채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이 아름다운 빛의 파노라마는 햇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해서 얻은 측정값을 갖고 만들어낸 것이다.
1층 작은 방의 한 벽에는 서울 하늘에 뜨는 태양의 고도를 1년 간 1주일 단위로 추적해서 52개의 오목거울로 설치한 작품 <서울의 태양 패턴> 이 있다. 8자 모양으로 느슨하게 한 번 꼬아 놓은 은구슬 목걸이처럼 반짝이는 이 작품은 서울의 위도와 경도를 갖고 태양의 궤적을 계산해서 설치한 것이라, 오목거울 하나 하나가 고유한 좌표를 갖고 있다. 서울의>
태양 목걸이 옆에는 무정형의 파동 그래프처럼 보이는 16장의 흑백 프린트 <보행자의 파동 연구> 가 걸려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광센서를 붙이고 캄캄한 암실에 들어간 사람들이 걷고 움직이면서 그리는 선을 표시한 작품이다. 선 하나하나가 각 개인의 걸음걸이나 몸짓이고 보면, 광선 그래프처럼 보이는 사진 하나하나가 곧 각자의 초상인 셈이다. 보행자의>
지하 전시장에는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흔들리는 추가 그려낸 자동 드로잉 연작,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계단 설치를 위한 드로잉이 있다. 어두운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한 장소에서 빛이 시시각각 달리 그려내는 풍광을 사진으로 포착한 아이슬란드 자연 연작은 2층에서 볼 수 있다. 4월 13일까지. (02)734-9467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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