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와 종교계 사이에서 찬반 논란이 거셌던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가 ‘제한적 허용’으로 결론 난 것은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꼽히는 생명공학산업 경쟁에서 뒤쳐질지 모른다는 현실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논문조작 파문으로 1년 여간 줄기세포 연구가 크게 움츠러들면서 정부와 과학계는 선진국과의 생명공학 선점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느껴온 게 사실이다.
영국이 난자기증자에게 보상급 지급을 허용하는 등 경쟁국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현실도 ‘제한적 허용론’에 일정 부분 힘을 실어주었다.
정부가 지난해 5월 줄기세포 연구 활성화를 위해 10년간 총 4,300억원을 지원하는 ‘줄기세포 연구 종합 추진계획’을 수립, 발표한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물론 제한적 허용 결정이 나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국가생명위)는 지난해 11월 ‘제한적 허용안’과 ‘한시적 금지안’를 놓고 결론을 내려고 했으나, 민간위원들의 이견 차이가 워낙 커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한시적 금지안은 충분한 동물연구를 거쳐 연구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수정란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기초기술을 쌓은 후 허용하자는 안이다.
23일 국가생명위가 전체위원의 서면 표결 처리로 ‘제한적 허용안’을 의결한 것도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기 때문이다.
과학계 민간위원들은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 없이는 줄기세포 연구가 후퇴할 것”이라며 “윤리적 안전장치를 마련해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생명윤리계 민간위원들은 윤리적 문제와 함께 연구의 기술적 성공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현 단계에서는 체세포 복제배아에 대한 기초연구 실적을 쌓은 뒤 허용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생명윤리계 민간위원 7명은 이날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제한적 허용론’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가생명위가 생명윤리계 민간위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표결을 강행한 것은 미래 전략산업인 줄기세포 연구를 발전시키려면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과학계는 대체로 이번 결정을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제한적 허용’에 대해선 입장이 다소 엇갈린다. 김동욱(연세대 교수) 과학기술부 세포응용연구사업단 단장은 “이번 조치로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의 물꼬는 텄지만 건강하지 못한 난자들로는 연구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임시술 때 수정이 되지않아 폐기 예정인 난자나 적출난소에서 채취한 잔여난자만으로는 연구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과학보다는 윤리가 우선인 만큼, 제한적 틀에서 연구를 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건 과학계의 몫”이라고 밝혔다.
체세포 복제배아
피부 등 신체의 체세포를 떼어 핵을 제거한 난자에 넣어 수정시킨 배아. 이렇게 복제된 배아를 자궁에 넣어 체세포 제공자와 똑 같은 유전물질(DNA)을 갖고 태어난 것이 복제양 '돌리'다.
의학적으로는 난치병 치료를 위해 환자의 체세포를 써서 복제배아 줄기세포를 만든 뒤 거부반응 없는 치료용 세포를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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