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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광풍/ <下>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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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광풍/ <下>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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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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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 안 된 학생 '선행학습' 무용지물

#올해 지방의 한 과학고에 입학한 김모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수학 선행학습을 하고 각종 경시대회를 치렀다. 차분하고 집중력이 좋은 김양은 무리 없이 과학고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한숨 돌리는가 했던 김양은 “1학년 때 올림피아드에 나가려면 고교 진도를 미리 배우고 오라”는 학교측 요구에 겨울방학이 더 바빴다. 하지만 주변에선 “일단 특목고에 들어갔으니 최소한 명문대 자리 하나는 따놓은 셈”이라고 부러워하고 있다.

#연세대 3학년에 재학중인 박모 양은 경기 김포시의 한 여고에 다니면서 학원을 한번도 다니지 않았다. “학교 정규 수업에 충실하면 된다”는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박양은 집에서 혼자 자료를 찾아 읽고 신문을 보며 공부했다.

어머니는 처음엔 “애 인생 망치려 작정했느냐”고 안달이었지만 박양이 꾸준히 전교 10등 내 성적을 유지하자 딸을 믿어주었고, 박양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선행학습은 명문대로 이끄는 지름길인가 아닌가. 누구나 다 하는 게 현실이라지만 효과를 두고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일단 특목고를 가야 명문대에 진학할텐데, 선행학습 안 하고 특목고를 갈 수 있는지 한번 해보라”는 말이 불문률처럼 퍼져 있는가 하면 “어차피 머리 좋은 학생들은 어떤 식으로 공부해도 좋은 대학 간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선행학습 맹신론의 근거는 명문대 진학률이다. 명문대 신입생을 대상으로 선행학습 여부나 정도를 조사한 자료는 없지만 특목고의 진학률이 일반고보다 몇 배나 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특목고 전문학원 H교육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지역 6개 외국어고와 2개 과학고의 경우 수험생 10명 중 9명(2,344명 중 87.9%)이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이화여대에 진학했다.

이중 한 외고의 경우 한 반 학생 37명 중 15명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입학하고 4명이 외국유학을 떠났다. 일반고의 경우 전교에서 3개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이 그만큼 될까말까다. “소신 운운하며 현실 외면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선행학습이 곧바로 성적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주관적 믿음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2002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선행학습의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선행학습을 한 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성적이 올랐다”(71%), “자신감이 생겨 수업에 열중하게 됐다”(70%)고 답했지만 실제 성적은 그렇지 않았다.

1~3개월 앞서 공부하는 단기 선행 그룹, 길게는 1,2년까지 앞서 나가는 장기 선행 그룹, 학교 진도에 맞춰 보충하는 병행 그룹, 학원을 다니지 않는 그룹의 6개월간 성적 변화를 비교하자 성적이 오르거나 내린 비율은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학생의 인지적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진도는 학습의 효과가 없다”고 교육·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미국에서 3년간 살고 온 초등학교 6학년 김모(고양시 일산구)양의 경우가 그렇다.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원의 상위과정반에 편성된 김양은 최근 학원에서 내 준 작문숙제를 제대로 써내지 못해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대학에 가서 선택하고 싶은 전공과 그 이유에 대해 쓰라’는 것이 주제였는데 초등학생에 불과한 김양은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관심사와 사고력에 맞아야 글을 쓸 것 아니냐”며 “한국 학원들이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선행학습만 시키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어 조기교육의 효과에 대해 연구했던 동덕여대 우남희 교수는 “유아에게 영어노래를 가르칠 경우 아이는 노래를 즐길 뿐이지 영어가 느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에게 언어나 수학 등을 반복 노출시키면 어느 정도 친숙해지지만 나중에 배운 문제를 못 푸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반복해도 학생의 인지능력, 사회적 경험, 정서적 성숙에 맞지 않으면 학생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안다”는 느낌만 갖고 넘어간다.

뇌 신경 과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서울대 의대 서유헌 교수는 “3세까지는 뇌의 기본 골격, 3~6세엔 사고력과 인간성 형성의 토대가 되는 전두엽, 7~13세에는 공간·언어 담당 부위 등 순차적으로 뇌가 발달하는데 이러한 단계에 맞지 않는 지식은 스트레스일 뿐”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동기와 성취감은 학습효과에서 더 중요하다. 뇌 과학자들은 동기를 부여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추진력을 뇌의 ‘집행기능’이라고 하는데 이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은 성인이 될 때까지 서서히 발달한다.

스스로 공부할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지식을 우겨넣어도 뇌는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수준에 안 맞는 선행학습은 오히려 흥미를 완전히 잃는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양분 실장은 “선행학습 효과 연구에서 새벽 2시까지 학원을 다니다 결국 건강도 해치고 공부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초등학생이 있었다”고 말했다.

학원 강사들도 “선행학습이 누구에게나 효과가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박교선 강남 영재사관학원 원장은 “초등학생에게 교육하는 다양한 과목들이 대입에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오산”이라며 “중학생까진 다양한 배경지식을 쌓는다는 데 초점을 두고 선행학습을 하더라도 1년만 앞서는 정도로 하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것도 원래 학업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더구나 대학 입학 후 공부와 사회에서의 성패는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할 줄 아는가’에 달려있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다면 선행학습이 인생성공의 밑바탕이 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 외국선 영재에만 적용

우리나라의 선행학습은 특목고 준비반에서 시작해 대다수의 초등학생까지 번진 상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이처럼 선행학습을 하는 것은 영재교육에서만 볼 수 있다. 정확한 용어로는 선수(先修)학습이 맞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존스홉킨스대 영재센터가 처음 문을 열어 여름학교에서 어린 중고생에게 대학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미국 대학에 비슷한 프로그램이 들불처럼 번졌다.

미 고교에는 우수 학생들에 한해 대학 과목 학점을 미리 딸 수 있는 선수(AP)제도가 있는데 바로 영재센터들의 영향을 받아 생겼다. 존스홉킨스대 영재센터 설립자로 미 영재 교육의 1세대 지도자로 불리는 줄리안 스탠리 교수는 “학교수업에 하품만 하는 뛰어난 아이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교육적 구원(救援)’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수 영재에게나 해당하는 속진(速進) 교육을 모든 학생들에게 다 적용하려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특목고를 준비하는 학생 중 극히 일부는 2,3년씩 앞선 진도의 수학을 가르쳐도 곧잘 따라온다.

교육자들은 경험적으로 “아무리 어려도 수학적 사고력이 극히 발달한 극소수의 학생들이 있다”고 증언한다. 이들에게는 학원에서의 선행학습과 특목고가 평준화된 고교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학습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아무리 선행학습을 해도 개념 이해에 막혀 당시엔 “아는 것 같다”가도 나중에 문제를 못 푸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평범한 학생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영재교육을 받았던 셈이다.

더구나 미국의 영재교육에서조차도 최근에는 창의적인 문제해결능력을 강조하는 심화학습이 주된 트렌드다.

중학생 정도의 어린 학생이 대학에 입학해 최연소 대학입학, 최연소 박사, 최연소 교수임용을 갈아치웠어도 세계적인 업적을 내는 것은 전혀 별개였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또 몇 년씩 월반한 학생들이 정서적 사회적 부적응 때문에 낙오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격됐다. 때문에 굳이 진도를 앞서나갈 필요 없이 제 또래의 지식수준에서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보는 폭넓은 경험이 창의력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지적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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