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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군의 아내로 이국땅 선택…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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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미군의 아내로 이국땅 선택…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입력
2007.03.2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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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도 美서도 유배‘워드 어머니들’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한국 보육원을 도와 온 질곡의 삶 조명여지연 지음ㆍ임옥희 옮김 / 삼인 발행ㆍ432쪽ㆍ1만 8,000원

미식축구 선수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아들이 성공한 후 한국에서 쏟아진 관심을 거북해했다. 미군 특히 흑인과 결혼한 한국 여성을 멸시하는 한인사회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미군과 결혼한 여성은 ‘외국인에게 더럽혀진 사람’으로 집안에서 버려졌고 미국으로 간 뒤에는 미국사회에 동화하라는 압력과 ‘순종적인 아시아 여성’ 역할을 해내라는 상반된 요구에 시달렸다. 미국인 사회는 그들을 ‘풍요를 좇아 미국 남성을 가로챈 교활한 후진국 여성’이라며 깔봤다.

두 나라로부터 유배된 이 여성들은 주저앉아 버렸을까. 미군과 결혼한 재미 한인 여성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한 최초의 책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인 군인 아내들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은 1951~1991년 사이에 미국에 도착한 군인 아내 16명을 1993년부터 4년간 심층 인터뷰하고 군인 아내와 가족 150명을 참여관찰하고 한국의 기지촌까지 탐사한 후에 나온 구술사 연구서이다.

이 책에 따르면 1950년 이래 반세기 동안 10만명 정도가 미군 아내로 미국에 건너갔다. 1945년 미국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군 기지를 통해 숱한 직업이 창출됐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 70년대 후반부터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미군과 사귀는 여성들이 등장했다. 기지촌의 이미지가 강해서 미군과 결혼한 여성들은 곧바로 ‘양공주’로 오인됐다. 한국에서 남녀차별과 가난에 시달리던 ‘딸들’은 공부하고 성공할 기회를 기대하며 미국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더 참혹한 가난이었다. 미군들의 출신배경이 대개 그랬다. 한국음식도 기꺼이 먹던 남편은 미국 음식만을 먹고, 자녀를 미국식으로 키우라고 강요했다. 미국인들은 이들의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하며 은근히 차별했다. 외로움 때문에 한인들에게 접근하지만 그들은 도움만 받았다.

“(한국인들은) 통역이 필요하면 날 찾아와. 하지만 저녁식사 한 끼도 날 초대하지 않았어.” 골딘 부인은 사기를 당해 쫄딱 망한 의사와 대학교수 부부에게 집과 직업을 구해주었지만 그들은 살만해지자 한마디 인사도 없이 이사를 갔다.

대신 그들은 자매애를 발견했다. 서로 일거리를 물어주고 군인아내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함께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고 군인 아내들이 미국에 정착하는 것을 돕고 매년 바자회를 열어 한국의 보육원을 돕는다. 가족들을 미국에 데려와 정착을 도왔다. 1965년에 미국에 온 크린스핀 부인은 혼혈 미군 자녀를 입양했다.

1975년 미국에 온 브레넌 부인은 미국에서 번 돈을 꼬박꼬박 고향 집에 부쳤다. 그 달러가 한국경제에 이바지할 것을 알았다. 살만해진 가족이 누이를 외면해도 그들은 여전히 한국인과 가족을 도우면서 산다. “너무 외로우니까.”(고딘 부인)

여지연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역사학)가 펜실베이니아대 박사학위 논문을 보완해서 펴냈다. 가난한 여성을 희생시켜 경제부흥을 이룩한 뒤 그들을 외면한 한국사회와, 다른 나라에서는 군인 매매춘에 엄격하면서도 유독 한국에서는 방만하고 미국 잣대만을 강요하는 미국식 일방주의를 동시에 비판한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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