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장관급 회담을 나흘 앞두고 9개월 협상기간 동안 전혀 거론하지 않았던 ‘쌀시장 개방’ 카드를 꺼낸 것은 쇠고기, 자동차 등 민감 분야에서 최대한 많이 얻어내려는 마지막 충격 요법으로 볼 수 있다.
쌀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이 쌀을 언급할 경우 협상은 결렬된다”고 단언했을 만큼 우리로선 초민감 품목이다. 실제 정부는 미국이 진심으로 쌀 시장 개방을 요구한다면 FTA 협상은 결렬수순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도 쌀 시장 개방을 유보했고, 당시 미국도 동의했기 때문에 FTA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이 같은 입장을 잘 아는 미국이 쌀 문제를 꺼낸 것은 쇠고기, 자동차 등 다른 민감 분야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쌀 문제를 거론했다는 소식을 워싱턴에서 전해들은 협상단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뒤숭숭하다. 미국 입장에서 쌀만큼이나 민감한 ‘존스 액트’(Jones Actㆍ미 연안의 승객ㆍ화물 수송을 미국 국적 선박에만 허용하는 제도)를 폐지하도록 압박하는 문제까지 거론될 정도다.
특히 미국이 9개월에 걸친 협상 기간 동안 쌀을 거론하지 않다가 막판에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양국 협상단 사이의 신뢰를 뒤흔든 것으로 볼 수도 있어, 통상장관 회담을 앞둔 양국 협상단 사이에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한국측은 현재 ‘딜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로 1, 2가지 분야를 꼽는다. 쌀, 쇠고기를 포함한 농업이 가능성이 가장 높고, 상황에 따라 자동차도 딜브레이커가 될 수 있다.
장관급 회담에서는 쇠고기,감귤(오렌지),돼지고기 등 초민감 품목의 관세 철폐 여부에 대한 담판이 있을 예정인데, 미국이 쌀까지 거론하면 협상은 매우 복잡해기면서 꼬이게 될 전망이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한국의 자동차 세제 및 기술표준, 미국 자동차 시장의 관세 철폐 폭 및 기한을 어느 수준에서 맞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있는데, 양측 모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어 타협 여부 및 수준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또 저작권자 사망 후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라는 미국의 요구, 섬유 분야의 미국 관세인하 품목수,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 등이 남아 있는데, 이 부분들은 협상 결렬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워싱턴에서 19일부터 사흘간 열린 고위급 회담은 10여 개 쟁점 분야에서 어느 것 하나 완전 타결을 이루지 못했지만, 분야별로 이견을 좁히고 장관급 회담에서 AㆍBㆍC안 중 선택 가능하도록 어느 정도 ‘세팅’은 완료했다는 평가다.
26일부터 열리는 장관급 회담은 수석대표 회담, 분과장급 협상과 동시에 진행된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장관급이 만나 세세한 품목들의 관세율이나 원산지를 논의할 수는 없지 않냐”며 “큰 줄기에 대한 결단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FTA 쟁점을 놓고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전화 회담이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답해 FTA 막판 협상을 위해 한미간 전 채널이 가동될 것임을 시사했다.
워싱턴=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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