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시절 '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이란 관제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다. 1인 장기집권 체제를 보장하는 10월 유신의 명분을 경제 성장에서 찾으려는 선전 공세였다. '1000불 소득'은 1인당 국민소득(GNP) 1,000달러 달성을 의미했다.
그러나 요즘 국민소득은 GNP가 아니라 GDP(국내총생산)로 따진다. 국경을 넘나드는 경제 활동이 일반화하면서 국적의 의미가 퇴색한 때문이다. 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모두 더한 GDP 개념이, 그 나라의 경제 현실을 더 정확히 반영한다는 생각에서다.
▦ 한국은행이 21일 발표한 '2006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 GDP는 5.0%가 늘어났지만, 실질 국민총소득(GNI) 증가는 2.3%에 그쳤다. 왜 이런 엄청난 차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역시 개방된 경제구조 탓이다. 폐쇄된 경제라면, 한해 생산된 부가가치 총액은 그 나라의 국민소득과 일치해야 한다.
한 국가의 한해 생산, 소득, 지출은 모두 같다는 이른바 '국민소득 3면 등가의 법칙'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대외무역의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교역조건의 변화에 따라 국민소득도 춤을 추게 된다.
▦ 예를 들어 반도체 100개를 수출하면 원유 100배럴을 수입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반도체 수출 가격이 50% 하락한 대신 원유 수입가격은 50% 상승했다면, 반도체 200개를 팔아야 겨우 원유 50배럴을 사오게 된다. 이처럼 교역조건이 악화하면 구매력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국민 소득감소 효과를 가져온다.
GNI를 국민이 느끼는 체감소득으로 해석하는 이유다. 물론 실질적으로 교역조건 변화는 국민이 아니라 기업이 영향을 받게 되고, 유가가 오르더라도 환율이 떨어지면 상쇄효과로 국민이 느끼는 충격이 덜할 수 있다.
▦ 지난해 전기전자 제품의 수출단가는 7.6% 감소했으나 원유수입 단가는 24.7%가 증가했다. 교역조건이 악화한 주된 배경이다. 전기전자 제품의 90% 이상은 반도체. 결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가 넘는 반도체의 가격 하락이 지난해 GNI 증가율을 크게 끌어내렸다는 얘기가 된다.
안타깝게도 반도체 가격은 올해 들어서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두업체 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으나, 수요는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해 장기 전망도 어두운 편이다. 기업에서는 비명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정부는 소리 탓만 한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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