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소개부터 하죠. '16번 수트'입니다. 아르마니 매장에서 직원들이 그렇게 부르더군요. 조르지오아르마니 블랙라벨 다음으로 고가 라인인 아르마니 꼴레지오니의 2006년 추ㆍ동 투버튼 정장입니다.
지난해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기도 전인 7월 한국 땅을 밟았으니 9개월째. 저와 함께 모두 40벌의 '16번'이 한국 입국에 성공했습니다. 아르마니를 한국에 수입ㆍ판매하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바이어가 그 해 1월에 이탈리아 본사에 와서 우리를 골랐답니다.
백화점 매장에 나와 6개월 가량 한창 잘 나갔는데, 그때 제 몸값은 213만원이었습니다. 제 동료 중 70%는 이때 주인을 찾았죠.
12월 중순이 되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더군요. 1월이 되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1월 백화점 정기세일 기간에 겹쳐서 해마다 아르마니도 세일을 한답니다.
제 몸값이 정상가에서 30% 떨어지면서 149만1,000원. 또 일부 명품 브랜드는 12월부터 세일에 들어가기도 해 단골들은 알아서 세일 기간이 되기를 기다리는 거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일 개시 전에 VIP 고객만 대상으로 살짝 사전할인을 하기도 했다는데 요즘 그건 사라졌다네요.
저처럼 겨울 세일에서도 주인을 찾지 못한 추ㆍ동복들은 세일이 끝난 뒤 봄ㆍ여름 옷들에 매장 자리를 물려주고 나왔습니다. 저와 똑같은 신세의 다른 명품 브랜드 제품들도 한데 모여 2월 설 연휴 직전 2차 세일에 들어갔습니다.
예전에는 호텔 행사장을 빌려서 하곤 했는데 올해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이벤트홀에서 하더군요. 몸값이 또 한번 떨어졌네요. 정상가의 절반인 106만5,000원으로요.
이렇게까지 하고도 팔려나가지 못한 옷들은 12~15% 정도 된다고 합니다. 원래 아웃렛이 있다면 거기로 가면 될 텐데 국내에는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 8~9개월은 정처 없이 각 백화점의 '수입대전' 등 각종 기획전에 끌려다녀야 해요.
그러고 나면 반품처럼 팔기 곤란한 것들만 남게 되는데, 제품 사정 뻔히 아는 직원들에게 특별 균일가 방식으로 처분된다고 합니다. 루이비통이나 샤넬처럼 해외 본사가 한국지사를 세운 경우 우리 같은 재고들은 본사로 돌아간다고 하네요.
문향란 기자 iam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