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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의가 악의를 이길 수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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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선의가 악의를 이길 수 있을 때

입력
2007.03.2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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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휴대폰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지 않는 전화는 받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 그만큼 나와 세상과의 소통이 제한되어 버린 셈이다. 세상과 치열한 몸싸움을 거쳐야 할 연극쟁이가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닫아건다면 분명 불행한 일일 것이다.

● 냉소적이고 영악해진 사회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셰익스피어의 말마따나 '악의가 선의를 지배하는' 꼴이 되어 버려서, 체면과 염치를 가리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는 나서는 자, 앞장서는 자, 무언가 일을 하고자 하는 자에게 어떻게든 구정물을 뒤집어씌우고 흠집을 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악의가 활개치기 시작했다.

관객이 연극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들 말하지만, 요즈음은 연극을 보는 자들이 제왕처럼 군림하고, 연극을 만드는 자들은 옛 대장간에서 담금질을 하던 대장장이처럼 굽실거리며 그들의 눈치를 보는 하인 격이 된 느낌이다. 한편의 연극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그 내용을 전달하는가 따위의 고전적 덕목은 사라져 버렸다.

누가 출연하는가, 홍보를 어떻게 잘 하는가, 관객이 얼마나 들었는가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가려지는 세상이니, 영악하지 못한 인간들은 연극도 제대로 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버렸다. 왜 연극을 하는가? 연극이 근거 없이 흘러 다니는 홍보 선전과 알량한 문화적 기득권을 행사하려는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삶의 의식이고 행위였던가?

언제부터 우리사회가 이렇게 냉소적이고 영악해져 버렸는가 생각해 보니, 그건 분명 정치판이 어질러 놓은 흐린 물인 듯하다. 요즈음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가장 큰 볼거리는, 누가 어떻게 망신살이 뻗치지 않고 살아 남아 대선 후보가 되는가이다.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이 증권시세처럼 매일 오르락내리락하고, 명색이 국가를 경영해야 할 후보 인사들이 연예인처럼 애써 뻔뻔스러움을 가장하며 대중 앞에 나서니, 이게 무슨 정치판인지, 연예계인지, 서바이벌 게임장인지 가늠할 수 없다.

정치라는 게 영악한 흑색선전과 자기PR에 의한 대중조작으로 그 결과가 드러난다면, 옛 희랍의 철학자가 예고했듯이 중우정치(衆愚政治)의 함정에 떨어질 위험성이 있다. 이게 정치의 본질인가?

본질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부패한다. 흐르는 시간을 버텨낸 연극과 정치만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연극은 일상을 뛰어 넘는 꿈의 추적자들이 벌이는 특별한 선택이고 행위이다.

작품의 승패를 떠나 예사롭지 않은 선택을 한 연극인들에게 관객은 경외감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연극인들에게 생명처럼 귀중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긍지이고 명예이다. 그들을 누추하고 씁쓸하게 방치하는 세상은 야만적이다.

● 자기 삶에 긍지ㆍ명예 지녀야

정치는 자신의 개인적 삶을 떠나 전체적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자들의 특별한 선택이다. 정치가들에게 생명처럼 귀중한 것은 세상에 대한 자신의 관점이며 실천적 행위이다. 연극인이건 정치가건 대중에게 잘 보이려 애쓰고, 근거 없는 여론에 영합하여 인기를 끌려는 행위는 스스로 천민 대중주의적 속성에 자신의 선택을 맡기는 꼴이 아닌가.

셰익스피어는 <베니스의 상인> 에서 배우의 입을 빌려 재판관에게 이렇게 말한다. " 재판관이시여, 악의가 선의를 지배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판결해 주시오." 냉소적이고 비아냥거리고 자기들끼리 부추겨 세우고 타인에 대해 습관적인 악의성을 지니는 세상은 불온하다.

우리는 지금 불온한 세상을 넘어가고 있는가?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선의가 악의를 이길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다.

이윤택 극작ㆍ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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