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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광풍/ <上> 특목고 입시가 진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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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광풍/ <上> 특목고 입시가 진원지

입력
2007.03.2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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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생이 토플 보고 중학생은 대학수준 공부

온 나라가 ‘특목고’를 향한 사교육 열풍에 몸살을 앓고 있다. 외국어고로 대표되는 특수목적고는 명문대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초등학생 학부모의 30%는 자녀의 특목고 진학을 원하고 있다. 때문에 중학생은 물론 초등학생들도 선행(先行)학습이라는 명목의 ‘입시 지옥’에 내몰리고, 학원과 과외비 부담으로 학부모의 허리는 휠 지경이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사교육 열풍의 진원지로 특목고를 지목하고 외고와 과학고 단속에 나섰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다. 특목고에 목 맨 선행학생의 실태와 문제점, 해법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주

초등학생은 토플과 씨름하고 중학생은 대학 전공과정의 과학 문제를 푼다. 학원은 부족한 실력을 보충하기 위한 곳이 아니다.

남보다 더 앞선 과정을 배우고 그 내용을 반복해 ‘좋은 학교’에 가려고 다닌다. 선행학습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곳은 특목고와 국제중학교다. 정부는 20일 2004년에 이어 3년 만에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다시 내 놓았다.

우선 사교육 열풍의 ‘주범’인 외고에 칼끝을 겨누고 있다. ‘어학과 과학 영재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대입 위주로 운영하면 특목고 지정을 취소한다는 엄포를 놓았다.

지난해 ‘외고 지원 지역제한제’를 강요한데 이어 초강수를 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행학습은 기본?

20일 오후10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사거리 학원 앞은 고급 승용차들의 주차장으로 변했다. 수업을 마친 중고생들은 지친 얼굴로 부모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승용차들은 경적을 울려 댔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중3인 김지훈군은 올림픽공원 방향의 학원버스를 기다리며 필기노트를 펼쳤다. “수업은 10시 끝났지만 수리 논술 문제를 풀었다”는 그는 현재 고교 2년 과정의 수학을 배운다.

강남의 E초등학교 6학년 강모군은 하루에 외워야 할 영어단어가 80개다. 토플 시험에 대비해 영어전문학원에서 내준 숙제다. 다섯 살 때부터 영어학원에 다닌 강군은 “국제중에 가는 게 올해 목표”라며 “나중에 꼭 검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중3 박모군은 수학은 고교 과정 전부를, 과학(생물)은 일반 대학과정 수준을 모두 마쳤다. 일단 과학고 진학이 목표지만, 과학고에 들어간 뒤에도 우수 학생과 경쟁하고 명문대에 입학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특목고 안 가도 ‘특목고반’은 간다.

특목고 전문 학원이 밀집한 노원구 중계동 T학원 앞은 학생들로 한밤까지 북적댄다. 오후8시께 학원에서 상담을 마치고 나온 중2 이모양은 “중3 과정도 공부하지 않았는데 고교 과정에서 문제를 낸다고 해 난감하다”고 푸념했다.

외고나 과학고에 가지 않더라도 학생들은 일단 외고반이나 과학고반에 ‘합격’하려고 기를 쓴다. 서초구의 특목고 전문 J학원은 지난해 25명으로 과학고반을 꾸렸다.

하지만 실제 과학고엔 절반도 안 되는 12명이 지원했고, 6명만 합격했다. 학원 관계자는 과학고반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학력 수준이 높은 아이들과 함께 한 반에서 공부하다 보면 자신도 실력이 늘어난다는 생각에 무조건 ‘남는 장사’라고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감안한 듯 강남구의 모 어학원은 2004년 초 폐지했던 외고반을 올해 새 학기에 부활했다. 일단 ‘외고’하면 우수한 아이들이 몰려 들고, 약간 처지는 아이들도 덩달아 실력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 심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다시 만들었다고 했다.

국제중ㆍ영재교육원도 가세

특목고는 물론 국제중 입학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들의 선행학습도 놀랄만한 수준이다.

영어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내내 영어전문학원에서 살다시피한 D교 6학년 김모(12)군은 “서울대를 가려면 국제중처럼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게 중요하다”며 “주위 친구들도 다 비슷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영재교육원과 올림피아드 대회도 선행학습 열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선행보다는 심화학습에 초점을 맞춰 선발시험 문제를 출제한다”고 하지만, 학원측은 ‘선행 없이 심화 없다’는 논리로 학부모와 학생에게 대대적인 홍보 작전을 펴고 있다.

최근엔 학원에서 입수한 기출문제, 이른바 ‘족보’를 외워 입학하려는 ‘가짜 영재’를 차단하기 위해 각 교육청마다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홍덕표 서울시교육청 영재교육팀장은 “문제 해결력 검사 등의 내용이 공개되면 학원에서 이를 ‘암기 패턴’으로 바꿀 우려가 있어 문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고 특별 전형 혜택이 주어주는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 대회는 아예 선행 학습 없이는 입상은 꿈도 꿀 수 없는 ‘구름 위의 고봉’이다.

경기 분당의 유명 특목고 입시학원 강사 이모(35)씨는 “중학교 때 과학 올림피아드 대회를 준비하거나 과학고에 가기 위해선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사이에 고교 수학 과정을 2번 반복해 놓는 게 대세”라며 “과학은 특히 최소한 대학 교양 수준까진 익혀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적이 우수한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학교가 특목고 진학에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이다. 딸을 올해 서울 D외고에 보낸 주부 최모(42)씨는 “영어 등 모든 과목을 똑같은 교과서를 갖고 획일적으로 가르치는 교실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2002년 ‘선행학습 효과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선행학습은 성적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많은 부작용을 낳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결과가 맞는지 여부를 떠나, 현실은 이와 거꾸로 가고 있다.

박원기 기자 one@hk.co.kr이경진ㆍ신보경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부 3)

■ 교육부 파상공세에 외고, 대책마련 부심

교육부의 ‘2008년 사교육 대책’은 특수목적고, 특히 외국어고를 겨누고 있다.

실제 특목고 진학을 희망하는 초등학생의 94.2%, 중학생의 87.6%가 사교육을 받고 있다. 소득이 상위 20%이내인 가구의 사교육비는 외고 설립이 본격화한 2002년 30% 이상 뛰었다.

외고 측은 그러나 “해도 너무 한다”고 반발하면서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외고 교장은 21일 “지들(교육부)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세요”라고 쏘아붙였다. 몇 달 간격으로 쏟아지는 ‘외고 정책’에 넌덜머리가 난다는 투였다.

“더 할 말이 없다”는 이 교장은 “대한민국 국민이 법을 잘 지켜야지 별 수 있겠냐. 언론도 조용히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하식 한국외대부속외고 교감은 “문제가 있다면 교육청의 장학지도 등 지금 있는 법규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며 “설립 목적 위반 등 분명치 않은 이유를 들이대며 ‘외고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편견을 갖고 내린 조치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목고 전문학원을 운영하는 안병철(41) 원장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면 비슷한 실력을 갖춘 또래와 어울리고 싶은 게 당연하다”며 “외고 같은 ‘좋은’ 학교는 한정돼 있어 과열 경쟁이 빚어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무작정 ‘특목고 러시’에 합류하는 학부모들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경기 성남시의 한 학원에서 9년째 특목고 입시를 맡고 있는 이모(35) 강사는 “해당 학년의 과정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부모가 아이 실력도 모르고 자기 욕심에 무턱대고 특목고 진학반 수강을 고집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나 전국교직원노조는 일단 교육부 정책에 반색이다. 안병규 신목중 3학년 부장 교사는 “공교육 정상화 측면에서 특목고의 내신 비중을 강화한다는 정책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정애순 전교조 대변인은 “설립 목적과 달리 파행 운영하는 특목고를 지정 해지하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해지 권한이 시ㆍ도교육감에게 있는 현실에서 제대로 지켜질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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