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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디지털과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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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디지털과 고전

입력
2007.03.2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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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의 명물 자금성(紫禁城)의 모든 것을 내년부터는 앉아서 샅샅이 볼 수 있게 된다. 중국 문화부와 미국 IBM이 합작한 '가상 자금성'의 3D 작업이 내년 초 완성되기 때문이다.

자금성은 15세기 초 명나라 때 건축된 궁정. 현존하는 중국 최대 규모의 건축물로 국가 중요보호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 작업은 역사 기록과 문화 유산을 디지털 시대에 맞게 보관, 저장하려는 대표적 문화 사업으로 국제 협력의 성공적 사례라 할 만하다.

■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이런 성공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문화 업적의 보존 측면에서 디지털은 오히려 위기를 부르는 역설이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얼마 전 미국 언론들은 공립 도서관에서 문학의 고전들이 서가에서 퇴출되는 현상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 등 고전물을 찾는 사람들이 없어 공공 기관들이 보관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 대출이 문화행위 실태를 가늠하는 전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정보와 참고자료 검색을 갈수록 디지털에 의존하다 보니 문화의 퇴행 현상이 빚어진다는 지적이다.

■ 이 현상을 눈 여겨 보는 사람들은 학자들 중에서도 디지털 검색으로 연구 조사 활동을 끝내 버리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모든 역사 고전 자료를 디지털화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말에 불과하다.

디지털 콘텐츠의 압도적 선두를 달리는 미국만 해도 각종 역사사료와 문화 업적을 디지털화하는 데 큰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의회 도서관의 경우 1억 3,200만 개의 소장물 중 디지털화 실적은 그 10%도 안 된다는 것이다.

검색업체 구글이 의회도서관에 3,000억 원을 지원한다고 하는데도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한다. 예산과 노력이 집중되는 대표적 공공기관이 이 정도이니 여타 일반적인 경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우리나라의 디지털 자료도 만만치 않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 웹 정보로 제공되는 고전 사료들이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일부 전문 분야나 특정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에 불과하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다 보면 인터넷 작업만이 전부인 양 착각해 버리기도 십상이다. 세월이 한 참 지나고 보면, 스캐닝을 못해 디지털화 되지 않은 문화 업적은 어디서도 찾지 못하는 유실물이 될지도 모른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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