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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영화 ‘천년학’ 임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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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영화 ‘천년학’ 임권택

입력
2007.03.2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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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도 하나의 숫자일 뿐. 그렇게 가볍게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런가. <하류인생> (2004년)이 끝나자마자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가 “100번째는 뭘 할거냐” 였다. “아차, 이게 아니구나.”

그런데 이상했다. 그 말이 “골치 아픈 것이지만 한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게 해 주었다. 임권택(74) 감독의 <천년학> (4월12일 개봉)은 이렇게 해서 시작됐다. 참, 산고도 많았다.

<서편제> (1993년)때에 엄두가 안나 포기했던 소설가 이청준씨의 남도소리 3연작의 마지막인 <선학동 나그네> 의 몽환적 분위기를 그려나갈 일도 징한데, 처음부터 덜컹거렸다. “스타 배우가 없다”며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충격이었다. “흥행한 내 영화에 어디 스타가 있었나, 참.”

그 바람에 평생 파트너로 갈 줄 알았던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과도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다행히 이후 투자자가 나섰고, 좋은 사람들(조재현 오정해 정일성 이청준 양방언)이 몰려들어 ‘천년학’을 그렸다. 이제 그 학이 날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임 감독. “홀가분하다.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남남이지만 소리꾼 양아버지 유봉(임진택)에게 맡겨져 오누이로 자란 동호(조재현)와 송화(오정해)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 판소리와 로드무비. 당연히 <서편제> 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감독은 “인물들의 관계, 오누이가 서로 찾아 헤맨다는 것 말고는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했다. <서편제> 를 보지 않고도 이해 할 수 있고, <서편제> 가‘이런 소리가 있다’는 소개 정도라면 <천년학> 은 판소리가 주는 감흥이 두 주인공의 삶에 깊이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100편째 한다는 놈이 <서편제> 아류나 만들면 어쩌나. 100편씩이나 찍는다는 놈이, 그런 경력을 가진 놈이 영화에도 그런 면이 보여야 되지 않나. 그래서 더욱 정성을 들였으니 나 자신 영화에 실망할지 몰라도 완성을 위해 애쓴 흔적들은 쌓여 있을 거라고.”

<천년학> 에는 임권택의 전작 <서편제> <축제> <춘향뎐> 이 그렇듯 한국의 전통문화와 언어와 소리와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다. 정일성 촬영감독은 단순한 풍경으로서가 아닌 사랑을 더욱 처연하게 드러내기 위해 노구를 이끌고 장흥 해남 광양 진도 제주로 옮겨 다니며 사계절을 담았고, 배우 조재현과 오정해는 감정을 판소리가락에 싣기 위해 손이 아프도록 북을 두드리고, 소리를 내질렀다.

이청준씨는 남도의 미묘하면서도 감칠 맛나는 대사를 만들어냈고, 재일동포 피아니스트 양방언은 해금 태평소 대금의 애잔한 소리로 그리움을 표현했다.“작품이 되려고 그런지 조재현도 먼저 연락이 와 아무 역이나 하겠다고 했고, 오정해도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독하게 살을 빼 이쁜 배우로 다시 태어나더라고.”

<서편제> 에서 송화 동호 유봉이 구비구비 산길을 내려오며 신명 나게 <진도아리랑> 을 부르는 롱테이크 장면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궁금하다. 또 기대도 한다. “그게 말이지. 이번에는 둘의 이별 장면이지. 넓은 제주 벌판에서 송화와 동호가 판소리 춘향가의 한 대목( ‘갈까 보다’)을 눈물을 삼키며 부르지. 카메라도 움직이지 않고 그 소릴 듣고 있지.”

하나 더 있다. 부자집 노인의 첩으로 들어간 송화가 그 노인의 죽음 앞에서 부르는 노래. 임 감독은“죽음이 장대하다는 느낌이 들어. 생각지도 않은 데서 우리의 풍류가 드러나데. 감동적이야”라고 했다. 그 풍류가 주는 감동을 젊은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정말 궁금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의 주시할거야.”

한 달만 참으면 칸영화제가 열리니 출품하고 난 뒤에 개봉해도 될 법한데. “배짱이 생긴 거야. 굳이 영화제를 등에 업지 않아도 영화만 충실하면 흥행이 될 것이니까. 또 4월이 나에겐 행운의 달이기도 하고. 그 때 개봉한 것은 흥행이 잘 됐으니. 또 만들어 놓고 기다리면 김도 빠지고.”

100편을 만든 거장도 흥행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다. “칸영화제 수상의 염원도 이뤄졌고, 100편도 만들었으니 이제 나에 대한 기대, 성원, 빚, 멍에,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할 것 같아. 체질 때문인가.”

이대현 leedh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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