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 사립대 건축학과 A교수는 지난 한 달 새 몸살을 세 차례나 앓았다. “수면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그는 “몇 달 앞으로 다가온 한국건축학교육인증원(KAAB)의 현장 실사(實査) 때문에 쉴 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B교수는 “2년 가까이 준비했는데 반드시 실사를 통과해 인증을 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 150여 개 건축학과가 교육 인증을 따기 위한 전쟁에 뛰어들었다. 교수는 물론 대학원생, 학부생까지 1년여 전부터 총동원돼 논문, 발표문 등 연구 결과와 리포트, 실기 과제물까지 낱낱이 점검하고 실사단 방문에 앞서 가상 면접을 병행하고 있다. 실습실과 강의실 등을 뜯어고치는 대학도 있다.
이처럼 교육 인증에 목숨을 건 이유는 건축사 시장 개방이라는 외풍 때문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을 통해 건축사 시장 개방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홍영균 홍익대 건축학부장은 “시장이 열리면 국내 건축사와 연계해야만 사업을 할 수 있었던 해외 건축사들이 혼자서 사업권을 딸 수 있어 대거 몰려들 것”이라며 “국내 소비자들은 당연히 실력과 경험이 앞선 해외 건축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적으로 교육 과정을 인정 받는 인증 없이는 건축학과 졸업장은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며 “외국 건축 시장 진출에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어 교육 인증은 필수”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학들은 2002년부터 ‘건축실무에 관한 전문성 기준을 5년 이상의 교육과 2년 이상의 수련으로 한다’는 국제건축가연맹(UIA)의 규정에 따라 4년제 교육과정을 5년제로 바꾸고 있다. 올해 전환한 경희대를 포함 현재 75개 대학이 5년제다. 2005년에는 인증원(KAAB)이 설립돼 국제적으로 인정 받는 교육 인증을 주고 있다.
인증을 따려면 인증후보신청-인증신청-인증실사로 이어지는 3단계를 통과해야 하는데 후보와 인증신청은 대학의 자체 평가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서류심사로 진행된다. 인증원 관계자는 “지난해 후보신청에서 4개, 인증신청에서 1개 학교가 탈락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3단계를 통과한 대학은 서울대와 서울시립대, 명지대 등 3곳 뿐이다.
서울대 김광현 교수는 “4일간 진행된 인증실사에서는 외국 전문가를 포함한 심사위원단이 털 끝 하나 안 놓치고 살펴봤다”며 “학생들이 어떤 교육과정 속에서 어떻게 결과물을 만들어 냈는지를 따질 때는 초긴장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올해는 4월 실사를 앞둔 홍대를 포함 7개 대학이 실사 대상이다.
한양대, 건국대, 영남대 등은 교과 과정을 인증원 기준에 맞추기 위해 건축전문대학원을 신설했고 일부 대학은 기존 건축사를 위한 재교육 시스템도 만들었다. 재정 독립과 우수 교원 스카우트에 힘쓰는 대학도 여럿 있다.
인증을 딴 대학 졸업생들은 외국에서 건축사 응시 자격까지 자동으로 얻게 될 전망이다. 인증원 사무총장 최재필 서울대 교수는 “한국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7개국 인증기관과 2개 연합기관 등이 인증의 국가별 상호 인정을 위해 협의체를 만드는 중”이라며“2,3년 안에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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