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기획부에서 근무하는 정찬경(35ㆍ여)씨는 하루 일과 중 따로 스트레스를 해소할 필요가 없다. 짬짬이 책상 앞에 놓여있는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연예뉴스를 보거나,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는 게 아니다. 모니터를 통해 정씨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다섯 살 배기 소정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뛰어 노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씨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꽃이 저절로 피어나는 모습을 발견한다.
정씨를 비롯한 KT 직원들이 이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KT가 직원 보육지원 차원에서 실시하는 ‘가족행복 프로그램’이 있어 가능하다. KT는 가족행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근무 중 자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직장보육시설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를 부모의 컴퓨터에 연결시켰다.
정씨는 “무엇보다 아이와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에 심리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어서 좋고, 아이도 엄마가 늘 옆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예전보다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며 “그래서 업무에도 더 열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정씨에게는 또 다른 행복이다. 어쩌다 예상치 못한 야근을 할 일이 있을 때에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보육시설에서 밤 10시까지 아이를 책임지고 돌봐주기 때문이다. 정씨는 “아이를 일반 보육원에 맡겼을 때는 야근이라도 해야 되는 날엔 오후가 되면 마음부터 조급해졌는데, 사내 보육시설을 이용하고 나서는 이런 고민은 없어졌다”고 흐뭇해 했다.
KT의 육아 보육시설은 전문업체에 의뢰해 운영하는 것이어서 시설과 교사 모두 최고 수준이다. 특히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에게 진행하는 교육과정은 나이에 맞춰 특성별로 다르게 짜여져 정서발달에 도움을 준다. 보육시설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음식도 모두 유기농 식재료로 만들어진다.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KT의 ‘가족행복 프로그램’은 사원들에게 부담을 덜어준다. 사내 보육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일반 보육원의 약 50% 수준에 불과하다.
교재비와 특별활동비 등의 명목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요구하는 일반 보육원들과 달리 추가 비용도 거의 없다. 게다가 보육시설이 직장 내에 있어 출ㆍ퇴근 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적인 손실도 줄여 준다.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KT 분당 본사 성장사업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유경(36ㆍ여)씨도 여섯 살 난 아들 호석이를 두 살 때부터 회사 보육시설에 맡기고 있지만 아이 문제로 걱정하는 일은 거의 없다.
김씨는 “아들과 함께 출ㆍ퇴근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며 “이제는 아침과 저녁 출ㆍ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가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고 했다. 아이가 유난히 음식을 가리는 편이라 고민했지만 회사 보육원에서 좋은 식단으로 정시에 식사를 제공해줘 이 문제도 말끔하게 해결됐다고 김씨는 털어 놓았다.
그는 “회사에 아이를 맡기고 있는 사원들은 다른 직원들에 미안해서라도 업무에 더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며 “업무의 효율성 향상에도 회사의 이런 방침이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KT가 운영하고 있는 ‘가족행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만도 200명 이상이다. 김씨는 “다른 직장에 있는 친구 중 아이 문제로 직장을 떠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아마 (내가)KT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KT가 운영 중인 ‘가족행복 프로그램’은 남성 직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 달까지 아들을 약 3년 동안 회사 보육시설에 맡겨왔던 성원제 과장(35)은 이 프로그램 덕택에 주량까지 줄여 건강을 챙긴 케이스다.
성 과장은 “하루는 퇴근할 무렵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며 “저녁인데 왜 데리러 오지 않느냐고 물어오는 바람에 그날 저녁 술자리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본의 아니게 아들 덕분에 건강까지 돌보게 된 셈이다. 여기에 아이의 교육에 대해 담당교사와 많은 상담을 나누게 돼 자연스럽게 부부 간의 육아 분담 문제도 해결됐다. 아내에게 점수를 따는 것은 당연한 일.
성 과장은 “보통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여자의 몫이라고 여기는데 (내가)직접 아이를 돌봐서 그런지 아내에게도 떳떳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가 수익과 직접 연관이 없는 육아시설 같은 곳에 투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데, 회사가 나름대로 큰 밑그림이 있는 것 같다”며 “장기적으로 개인과 사회,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이런 직장 내 보육 시설들이 활성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 KT, 출산 의료비용 전액 지원
KT가 추구하는 ‘가족친화기업 실현’ 프로그램은 ‘출산과 양육을 위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KT가 가족 친화적인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특히 중점을 두는 분야는 사내 직원들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출산 및 양육 환경 조성이다.
이를 위해 KT는 출산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출산에 소요되는 의료비 전액을 회사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또 자녀 한 명 당 20만원씩 일괄 지급하던 출산장려금도 첫째는 20만원, 둘째는 50만원, 셋째 이후는 100만원씩 차등 지급할 계획이다. 각종 복지혜택 역시 다자녀를 둔 사원에게 우선 순위가 주어진다. 차량 요일제에서도 임산부는 제외할 방침이다.
현재 수도권 4개소를 포함해 전국 10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직장 내 보육시설도 매년 2~3개소씩 추가로 설치, 사원을 포함해 고객의 자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육아지원 제도 개선을 위해 육아 휴직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고, 휴직대상은 생후 2년 미만의 영ㆍ육아 근로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유연근무제를 통해 육아사원 출ㆍ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방침 아래, 근무 중 육아시간을 시간과 반일 단위 형태의 단축근무로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휴직자들의 적응능력 배양을 위해 KT는 직무, 어학, 육아 등 300개의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한편 KT는 ‘아버지 출산간호 휴가제’를 비롯해 ‘기념일 조기 퇴근제’, ‘가정의 날 정시퇴근’, ‘온ㆍ오프라인 어학강좌’, ‘초ㆍ중 자녀 영어캠프’, ‘원격진료시스템’, ‘가족의료비 지원’, ‘단체상해보험 가입’, ‘휴양 및 복지시설 제공’, ‘가족초청 문화행사’ 등의 가족사랑 프로그램도 병행하고 있다.
허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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