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국내 바둑계에 새로운 스타 기사 한 쌍이 탄생했다.
제50기 국수전 도전 5번기에서 이창호를 꺾고 새 국수에 오른 윤준상(4단)과 제5회 정관장배에서 막판 5연승을 거둬 한국팀에 극적인 우승을 안긴 이민진(5단)이다. 이들 남녀 스타 기사의 탄생은 그동안 약간 침체 분위기를 보였던 국내 바둑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 윤준상
윤준상의 이번 국수 획득은 두 가지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나는 자신의 첫 정상 도전에서 성공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상대가 이창호였다는 점이다.
성공하려면 기회가 왔을 때 꽉 잡아야 한다. 특히 1위가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승부의 세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정상에 오르기 일보 직전에 고배를 마시고 슬그머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가.
어쩌면 윤준상도 그들과 똑같은 길을 걸을 수 있었다. 1987년생으로 2001년 11월에 프로에 입문한 윤준상은 이듬해 3월 입단 4개월 만에 제7회 LG배 본선에 올라 최단 기간 세계 대회 본선 진출 기록을 수립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그 해 말에는 기성전에서 도전자 결정전까지 진출, 기세를 올렸다. 그 후에도 항상 미완의 대기로 주목받으면서 꾸준히 랭킹 10위권을 맴돌았으나 항상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오스람배에서 거둔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최근에는 강동윤 김지석 박정환 등 나이 어린 후배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 이대로 추월당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도 있었다. 그러나 준비된 승부사 윤준상은 입단 후 6년 만에 찾아온 첫 번째 정상 도전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또 하나 이창호를 누르고 우승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국내 바둑계가 이창호 시대에 접어든 이후 이런 저런 타이틀을 획득한 기사가 10여명에 이르지만, 이창호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기사는 조훈현과 유창혁 이세돌 최철한 외에 목진석(2000년 바둑왕전), 박영훈(2005년 물가정보배) 등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나머지는 모두 운 좋게 이창호를 피해서 타이틀을 따냈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당대의 1인자와 당당히 맞대결을 펼쳐서 이겨야 진정 정상에 올랐다고 인정 받는다. 그런 점에서 윤준상은 일단 정상권에 들어가기 위한 컷오프를 통과한 셈이다. 조남철 – 김인 – 조훈현 - 이창호로 이어지는 국수 계보에 10번째로 이름을 올린 윤준상이 ‘포스트 이창호 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이민진
자고 나니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더니 이민진이 바로 그랬다. 정관장배 최종국이 끝나 한국의 우승이 결정된 순간 ‘이민진’이란 이름은 삽시간에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 순위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한국 여자 바둑의 단체전 우승은 처음인데다 지난 2005년 이창호가 보여주었던 것과 똑같은 막판 대역전극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올해 스물세 살로 프로 생활 8년차에 접어드는 이민진의 위치는 항상 애매했다. 여류 국수전과 여류 명인전으로 대표되는 국내 양대 여자 기전 본선 무대의 단골 멤버로 통하면서 가능성을 인정 받았지만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루이나이웨이 – 조혜연 - 박지은 트리오의 그늘 속에 파묻혔다. 지난해 제10회 SK가스배 신예프로십걸전에서 9위를 차지한 것이 눈에 띄는 성적. 비록 상위 순위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쟁쟁한 남자 신예들과 맞대결을 펼쳐 10위 안에 들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한 대목이다.
이민진과 정관장배는 인연이 깊은 편이다. 정관장배가 단체전으로 바뀐 이후 계속 한국 대표로 선발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다. 한국 선수 4명이 이미 탈락했기에, 한 판이라도 더 이겨서 체면치레만 해도 다행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이민진은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겠다.”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동료들에게 허풍도 떨어 보면서 자기 최면을 걸기도 했다. 특히 출국 전 유창혁 최규병이 주도하는 연구실에 나가서 이영구 박영훈 등 강자들과 함께 공부한 것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운도 따랐다. 하지만 시합이 진행되는 도중 진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이기겠다는 욕심도 없었다. 그저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두겠다는 마음 뿐, 결국 그것이 기적 같은 5연승의 원동력이 됐다.
“정관장배를 계기로 루이, 박지은, 조혜연과 같은 여자 최강 그룹에 오르고 싶다” 정관장배에서 건져 올린 예기치 않은 진주 이민진의 등장으로 2007년 한국 여자 바둑계는 초반부터 대박 조짐이다.
박영철 바둑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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