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19층 여전감독실. 며칠 새 금융회사 신용카드 담당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호출’을 받은 것인데, 주로 “신용카드 상품의 손익 분석을 철저히 한 뒤 신상품 발매를 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자칫 부가서비스 과당 경쟁이 확대될 경우 가까스로 정상 궤도에 진입한 카드업계가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취지다.
금감원은 “협조 요청 내지는 업무 협의일 뿐”이라지만,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경고나 다름없다. 앞에서는 고분고분하지만, 뒤돌아서면 “지나친 처사”라며 잔뜩 볼멘 소리다. ‘카드대란 학습효과’에 묶여 있는 금융감독원과 연초부터 카드 영업 확장을 해온 금융계의 쫓고 쫓기는 ‘카드 전쟁’의 시작이다.
단초를 제공한 것은 하나은행이 지난 달초 출시해 10만장 이상 발급하는 등 큰 인기를 누린 ‘하나마이웨이카드’. 금감원은 ‘월 최대 4,000원 교통요금 할인, 대형 할인점 월 2만원 할인, 평생 연회비 면제’ 등의 부가서비스 혜택이 은행 카드부문의 수익을 해칠 만큼 과도하다고 지적했고, 하나은행은 마지못해 4월부터 신규 발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나은행은 카드 회원수를 300만명에서 올해 600만명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하나마이웨이카드’에 맞불을 놓을 신상품 출시를 앞두고 있던 다른 은행계 카드사들 역시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금융감독 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것이 불만이다.
한 은행계 카드사 관계자는 “금감원의 이번 조치는 지나친 측면이 없지 않다”며 “부가서비스의 많고 적음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도 아니어서 이달 중 출시 예정이던 신상품의 부가 혜택 재검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4월초 신상품을 출시할 예정이던 다른 은행계 카드사 역시 “서비스 폭까지 당국에서 지침을 정하면 상품에 대한 매력 자체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잔뜩 볼멘 소리를 했다.
전업계 카드사 역시 금감원의 조치가 달가울 리 없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결코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은행계 카드의 공세적 영업에 제동을 건 것은 다행스럽지만, 전업계 카드사의 무기인 마케팅력이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은행이나 카드사들은 부가서비스가 많은 신상품을 출시하면 고객들의 사용 증가로 수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이는 독점 시장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경쟁사들이 유사 상품을 출시하면 기대했던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요즘 고객들은 영리해서 카드사가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만 챙기는 ‘체리 피커’들이 상당수다.”
금감원 김준현 여전감독실장은 “은행과 카드사들의 자의적인 수익성 분석이 업계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위험 요인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감원 역시 입장이 명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개별 상품의 서비스 혜택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하는 것이 타당한지 명확한 답이 없다. 이 때문에 금감원과 금융계의 카드 전쟁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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