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하고 메마르고 거칠다.
최양일 감독의 첫 국내작 <수(壽)> 는 불친절한 영화다. 19년 만에 만난 동생이 눈앞에서 살해되는 것을 본 형의 처절한 복수극, 진부할 수도 있는 느와르가 뼈대다. 그러나 찬찬히 스토리를 음미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 영화의 매력은 ‘불친절한’ 감독이 툭툭 던져 놓는 폭력적 이미지 자체에 있다. 수(壽)>
‘수’라고 불리는 살인청부업자 장태수(지진희)는 어린 시절 헤어진 쌍둥이 동생을 찾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다. 19년 만에 형제는 힘들게 재회하지만, 한마디 말을 건네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동생의 머리를 관통한다.
복수심에 불타는 태수는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경찰인 동생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경찰서로 잠입한다. 그리고 어린시절, 동생과 헤어지게 만들었던 마약상 구양원(문성근)이 동생을 죽인 장본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영화는 집요할 정도로 처절한 복수극을 벌이는 수와 구양원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다. 허나 이 폭력성은 할리우드의 갱스터무비나 홍콩느와르의 ‘영화 같은’ 폭력과는 상당히 다르다. 바닥에 피가 고이고 눈알이 뽑혀 굴러다녀도 카메라의 앵글은 비정할 정도로 변화가 없다. 지독할 정도로 냉혹한 시선으로 폭력의 리얼리티를 잡아낼 뿐이다. 이른바 ‘하드보일드(hard-boiled) 액션’이다.
영화는 구구절절한 사연도 과감하게 무시한다. 내러티브를 가볍게 여기는 이런 전개방식은 국내 관객에게 상당히 낯설다. 그러나 그런 흐릿한 내러티브가 오히려 영화의 잔혹성을 더 깊게 만든다. 배경이 흐릿한 사진이 인물의 윤곽을 더욱 또렷이 만들듯이.
유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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