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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의 하이킥 라이프] (2) 이순재의 '다이하드' 시니어 액티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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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찬의 하이킥 라이프] (2) 이순재의 '다이하드' 시니어 액티비즘

입력
2007.03.2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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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배우 이순재는 ‘다이하드’다. 자기 길을 죽기로 지키는 완고한 배우로서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는 현역 중에서는 최고참, 최고령이다.

그러나 이순재는 텔레비전 연기의 자발적인 지지자는 아니다. 오히려 텔레비전 연기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에 이단(헤터로독스)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정통적 연기의 주무대라면 최강의 에너지로 호흡하며 사실주의 극(劇)을 표현하는 연극 무대라고 믿고 있다. 지난 1월 그는 오래간 만에 텔레비전을 벗어나서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의 무대에 섰다.

이순재는 연극무대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는 두 명의 늙은 ‘다이하드’가 아직도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83세인 국립극단 원로배우 장민호와 82세인 연극계 대모 백성희. 장민호는 2년 전에 쉴러의 <떼 도적> 을 무대에서 연기했다. 백성희는 이 달 22일 시작하는 연극 <황색여관> 의 무대에 나간다. ‘다이하드’들은 ‘뿌린 대로 거두어들이는 나이의 열매’로 아직도 성장세를 지탱하고 있다.

연극배우 출신인 이순재가 목하 텔레비전 출연에 의지하고 <거침없이 하이킥> 에 열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성장의 동력을 확인하려고 차선의 차선책이기는 하되 텔레비전 영상 속에 들어가서 높이차기를 하는 것일 테다. 활기차게 연기할 수 있고 수입도 짭짤하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격이 아닌가.

이순재는 1935년생이지만 육체적 나이는 매우 젊어 보인다. 과연 그의 육신은 극중 아들 준하의 엉덩이를 공중차기로 내지를 때 매우 가벼워 보인다. 도약용 운동기구인 트렘펄린을 신나게 구르면서, 콩콩 튀어 올라 맞은편 아파트 유리창으로 방금 목욕을 끝낸 여인을 넘겨보는 장면은 썩 웃긴다. 축구장에서는 슬로모션이기는 하지만 공을 요리조리 몰다가 골대를 향해 곧잘 내지른다.

MBC 스튜디오에서 <거침없이 하이킥> 을 촬영하던 이순재는 중간에 잠시 대기실로 나와 몇 가지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성장을 위해 시도하는 것은?

“우리 직종은 자유직이니까 각자 판단해서 자기역량에 따라 소홀했던 것, 고민하던 것을 찾아내 반복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근래에 좌절한 경험은?

“젊은 때는 경쟁에 밀리면 좌절한다. 근래에야 크게 욕심이 없으니까 좌절할 일이 없지.”

-스타시스템에 대한 의견은?

“스타는 젊을 때 누리는 조건이다. 그 지경에서는 예술적 평가보다 상업적 평가를 받는다. 스타 이후에 나이가 들면서는 더 익어가는 경우가 있고 중간에 끈기를 잃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원숙해가는 과정이다. 원로가 되면서 일가를 이루어 갈 때 붙는 힘이 고참권(古參權)이다.”

시니어 액티비스트인 이순재는 늙어 가는 것은 원숙해지는 과정이되 완성은 할 수 없는 도정으로 여긴다. 2000년대 들어 우리가 배우 이순재를 통해 보는 것은 노년의 정관적(靜觀的)인 초상이 아니라 청소년과 어울려서 성장을 지속하는 시니어 액터(배우)의 실천성과 행동성(액티비즘)이다.

관찰하건데 이순재는 젊은이에게 다가가서 젊은이를 이끌어 가는 것을 성장전략의 원천으로 삼는다.

겸임교수 이순재는 세종대 광개토관에 있는 영화예술학과의 학부 강의(매체연기와 실습)와 대학원 강의(무대실습 워크숍3)를 맡고 있다. 이 대학이 영화예술학과를 개설한 1998년부터 출강한 이순재는 특히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 4시간을 계속하는 대학원의 무대연기 실습에 여분의 시간을 전부 투입한다. 이번 학기의 대학원 수강생은 여학생 5명과 남학생 1명.

“내가 이 학교에 오는 의미는 따로 있다. 나는 이 돈을 받고 강의를 할 ‘군번’이 아니야. 뭔가 하나라도 여러분이 배우게 하려고 <하이킥> 출연 시간을 빼면 다 여기 온다.”

그는 “연기는 말에서 시작하고 동작과 표정이 말을 따라가므로 우선 화술에 대한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젊은 연기자들은 외형적인데만 치중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그는 퓨전 사극을 예로 들어 ‘개판’이라고 비판한다. “판서라는 놈이 수염만 달았어. 적어도 나이 40은 넘어야 판서 흉내라도 낼 것 아닌가.”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 3학년 때 전교 연극회를 재건하며 배우의 길을 택한 그는 이후 유진 오닐, 섹스피어, 아더 밀러 등의 고전을 통해 무대연기를 다졌다. 그는 대학원 수강생들에게 이번 학기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까뮈가 소설 <페스트> 의 주제를 극화한 <계엄령> 을 실존주의 문학 원전 그대로 3개월 간 줄기차게 연기해보자고 제의한다. “우리 한번 알차게 해보자. 여러분의 생생한 젊은 기를 받아서 나도 노익장이 되고.”

이순재 교수가 <거침없이 하이킥> 을 하?것을 본 소감을 묻는 질문지에 익명의 대학원생 두 명은 각각 이렇게 썼다.

“으 악!! 쇼킹 . 너무 재밌었어요. 새로운 모습이 너무나 잘 어울리시는 분! 정말 배우이십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왜 저런 시트콤을 하시나 생각을 했지만 이내 연기라는 것은 나이를 불문하고 장르를 불문하고 배우에겐 언제나 연기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해주셨어요.”

배우의 업이 평생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젊은 세대가 ‘야동 순재’ ‘악풀 순재’하면서 변신에 열광하는 것은 이순재에게 더 없는 성원이다.

“이순재 선생님은 어떻게 자기성장을 꾀하는 연기자라고 생각하느냐?” 하이킥을 공연하는 연기자들에게 물었다.

부인역의 나문희는 “대본을 손에서 놓지않는 모습, 항상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려 하시는 모습”을 가리켰고, 아들 역의 정준하는 “오랜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순조롭게 활동하신다. 연기에 몰입하는 집중력을 발휘하고 캐릭터를 과감히 흡수하면서 자기변신에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힘차고 간결한 문체로 200번을 고쳐 썼다는 대표작 <노인과 바다> 는 초현대에도 늙지 않고 시니어 액티비즘의 근성을 대변하고 있다.

대어를 낚으려고 분투하는 늙은 어부의 불굴의 의지. 84일 만에 기진맥진해서 돌아온 산티아고 노인은 “온몸이 지쳤어. 내가 살아있는 한 바다에서 낚시할 것을 맹세해”하고 중얼댄다. 남의 도움을 거절하고 혼자 힘으로 간신히 돛을 뭍에 옮겨 놓고 쓰러진다. 그런 노인을 이해하는 유일한 반려는 소년 마놀라다.

어떤 노병이 말하기를 당신의 젊음은 당신의 자신감의 강도에 비례하며, 당신의 늙음은 당신의 공포심에 비례한다고 했다. 산티아고 노인이 어린 마놀라에게 다가가듯이, 거침없이 투지를 보여주는 이순재 같은 액티브 시니어들은 미래의 희망을 잃어가고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놓아가던 20대 젊은이들에게 가깝게 다가갈 법하다.

■ 시니어 액티비즘(senior activism)

실버사회 약진현상 사회적 멘토 역할 톡톡

범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실버 사회의 약진 현상을 대변하는 말이다. 노령인구를 은퇴한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활동을 준비하는 생산적인 산업예비군으로 기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깔려있다.

2000년대 전후에 한국 사회는 패러다임을 바꾸어 노년이란 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출발하는 '청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실버유스(silver youth)라는 애칭이 어울리는 존재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팔팔하게 활동하는 어르신', '젊은이처럼 움직이는 인생선배' 등을 뜻하는 액티브 시니어는 다시 일터로 나가는 재취업형, 새 직업을 취득하기 위해 수련하는 구직학습형, 자기계발을 꾀하는 취미여가형, 공동체와 사회공헌에 주력하는 자원봉사형, 기술과 노하우를 교육하는 지식전수형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에 대한 기대는 산업현장에 노련기술(연륜이 들어간 노하우)을 제공하고, 사회적 선배로 시민사회의 중심에 서고, 멘토나 코치의 역할을 통해서 구성원의 정서와 성장을 관리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모아진다. www.givenzoneqx.com

안병찬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 ann-b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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