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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일간지, 관우는 호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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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일간지, 관우는 호색한?

입력
2007.03.19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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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촉(蜀)나라의 장수로 유비(劉備), 장비(張飛)와 의형제를 맺고 평생 의리와 충성을 저버리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관우(關羽)가 실제론 신의 없고 여자를 좋아하는 호색한이라는 학설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대만의 일간 <중국시보> 와 <동삼신문보> 는 19일 중국 사회과학원 신문미디어연구소 인윈궁(尹韻公) 소장의 저서 <종론삼국> 을 인용해 관우가 소설 <삼국지(三國演義)> 에서 묘사된 것과는 거의 정반대의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종론삼국> 에 따르면 나관중의 <삼국지> 는 ‘사실 3 거짓 7’로 지나치게 당시의 인물들을 왜곡하거나 과장되게 그렸으며 관우 말고 제갈량(諸葛亮>과 장비도 역사서에 기록된 것과는 상당히 다른 인물들로 나타났다.

하지만 관우처럼 크게 미화된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당시와 후대의 사서들을 보면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베고, 5개 관문을 돌파하면서 5명의 장수를 죽이며, 뼈 속에 깊이 박힌 화살을 태연히 빼내게 하는 등의 무용담은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인 소장은 여색을 멀리했다고 알려진 관우가 나이와 신분에 관계없이 미인을 좋아했다고 전했다. <삼국지> 에선 조조(曹操)가 환심을 사기 위해 관우에게 미인 10명을 보내자 모두 돌려 보내고 오직 인질로 잡힌 유비의 두 부인을 보살피는데 전념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정사 <삼국지> 의 <촉서(蜀書)> 와 <위서(魏書)> 편은 조조와 유비가 대군을 이끌고 하비성으로 여포(呂布)를 토벌하러 갈 때 관우는 상대 장수의 부인인 두(杜)씨가 미인이란 소문을 듣고 자신이 성을 함락할 경우 그를 달라고 조조에게 간청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조조는 관우의 청을 응낙했지만 성이 함락된 뒤 대단한 미인인 두씨를 보고 마음이 혹해 약속을 깨고 자신의 첩을 삼았다고 한다.

여기에 원한을 품은 관우는 이후 기회만 되면 조조를 살해하려고 애를 썼다는 게 인 소장의 말이다. 관우가 여자를 좋아했다는 사실은 송대와 원대의 구비문학에서 종종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종론삼국> 은 관우의 무술 실력에 관해서도 삼국시대의 혼란기에 그와 비슷한 무공을 갖춘 장수들은 적지 않았으며 소설같이 ‘천하무적’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가령 조조의 대장 방덕(龐德)의 화살에 얼굴을 맞아 패한 적이 있고 두 번이나 적에 의해 포로로 붙잡히기도 했다.

관우의 충성과 의리에도 의혹이 던져졌다. 인 소장은 특히 ‘관도(官渡) 전투’를 그의 면모를 알게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조조의 동정(東征)으로 패주한 유비는 원소(遠紹)에 몸을 의탁했지만 관우는 주군을 따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원소의 대장 안량(顔良)의 수급을 베어 조조에게 바쳐 유비를 곤경에 빠지게 했다.

인 소장은 이런 여러 가지 케이스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우는 불충불의하고 약삭빠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관우가 후대에 성인으로까지 추앙받게 된 것은 역대 왕조의 정치적 필요와 민간의 심리적 기대감으로 인한 ‘영웅 만들기' 때문이라고 인 소장은 분석했다.

이정흔 스포츠한국기자 viva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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