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하게 음지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원래 더 섬?한 제목이었는데 편집진의 반대로….”
작가 김원일(65)씨가 장편 <전갈> 을 발표했다.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소재로 한 <푸른 혼> (2005) 이후 2년만의 신작이다. “이전 작품보다 못하면 안 쓰는 게 낫다는 각오로 썼다”고 김 씨는 말했다. 1966년 등단 후 열세번째 장편. 푸른> 전갈>
20세기 초기 이후 3대에 걸친 삶의 궤적이다. 일제시대에 만주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일본 관동군 731부대에서 일제에 충성하다, 해방 되자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 온 조부 강치무가 출발점이다. 아버지 천동은 하얼빈에서 컸다. “하루삥 시절 엄마는 나를 개만도 못하게 길거리에 버려두고 키웠어.
나와 동생은 쓰레기통 뒤져 먹고 자랐지.” 삶에 내몰린 그는 프레스에 오른손이 절단돼 울산의 산동네 난민촌으로 밀려난다. 억지 결혼한 이웃집 처자는 그의 주사로 죽는다. 나, 강재필은 덩치만 좋다. 소년원, 필로폰 중독, 자살 미수 상습범, 우울증 환자란 딱지만 남았다.
궁핍의 풍경을 천연덕스레 묘사하는 입심에, 현재와 과거를 마음대로 오가며 시점이 수시로 혼재한다.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를 연상케 한다. “현대 사회의 그늘에 묻혀 전면에 나서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죠. 말할 게 없는 인간들도, 흙탕물에 고기 살 듯,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 씨는 <바람과 강> 에서 일제 하 배신을, <노을> 에서는 선동적 공산주의자를 내세웠다. 노을> 바람과> 음향과>
그는 “인간은 진보나 보수로 안 나뉘며, 결국은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같은 이치가 ‘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일제 36년을 살아 남은 한국인들은 음으로 양으로 비루하고 비천하게 살았다. (그 시대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새로운 진리를 위해 결별하는 것이다.”
소설은 ‘바다 이야기’ 같은 최근의 일까지 포섭한다. 독립 운동, 한국전쟁, 산업화, 도시 빈민, 건설 비리, 조폭의 이권 싸움 등 한국인들의 기억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사건들 역시 용해돼 있다. 나의 누나가 1979년 YH사건 때 투신하다 장애인 신세가 됐고, 누나의 남편이 도시산업선교회 전도사라는 설정은 한국의 현대사가 상흔의 기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현대사 문제의 마지막 세대다. 그 문제를, 우리가 보다 깊이 천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새 작품은 그래서 이 시대 문화 지형도에 대한 적극적 발언일 수도 있다. 그는 “요즘 젊은 소설들, 너무 사적이고 힘이 없다”며 “젊은 세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TV 드라마가 남녀 애정에 집착, 미시적인 데 함몰한 것도 한 이유”라고 말했다.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6월에 산문집, 가을에 중단편집, 해서 올해 세권을 낼 계획”이라며 “나이 드니 힘은 딸리지만 실험은 계속 하려 한다”고 말했다. “문학을 영상이 잠식한 시대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문학을 회복해 내는 역할이 있어요.” 그는 “<전갈> 에서 가장 매력 있는 인물을 들라면 아버지”라며 “몸뚱이 하나 갖고, 근면성과 근성으로 버텼던 현대사의 동력”이라고 덧붙였다. 전갈>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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