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명하신 대기업 회장님께서, 우리 국민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앞으로 몇 년 안에 위기가 찾아온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TV를 통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아아, 또 그 위기가 오는구나.
잊지도 않고 또 왔구나, 각설이도 아닌 위기가. 아직 젊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우리 국민은 위기와 친숙하다. 무슨 짝꿍 같고, 어릴 때 헤어진 친동생 같다. 어렸을 땐 줄곧 이런 말들을 들어야만 했다. 올해가 위기입니다, 올해만 잘 넘기면 됩니다.
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해를 넘겼더니, 그 다음 해엔 금강산 댐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위기를 넘기니, 또 다른 위기가 툭 튀어나왔고, 그 위기가 잠잠해지는가 싶으면, 다른 엉뚱한 위기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제 집을 한 채 갖고, 멀쩡한 직장도 가진 아버지들은, 잠자리에 누우면, 무언가 불안해서,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너무 평탄해도, 곧 어떤 위기가 찾아올 것만 같아, 마음이 늘 편치 않았다.
그런데 또 위기가 온다고 한다. 욕망의 눈높이가 멀고도 높은 사람들은 생의 모든 순간순간들이 위기일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같은 범인들마저도, 늘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위기를 먹고살며.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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