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오벌린(65ㆍ보잉코리아 사장), 그레고리 필립스(53ㆍ한국닛산 사장), 이보 마울(51ㆍ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 빌 라일(42ㆍPCA생명 사장), 제프리 존스(56ㆍ미래동반자 재단 이사장).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대부분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라고 대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한가지 더 있다. 이들 모두 집에 돌아가면 한국인 부인이 있으며, 한국 문화에 정통한 부인들의 섬세한 조언 덕에 높은 경영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취임한 한국닛산의 필립스 사장은 수입차 업계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인피니티의 판매 증가율은 업계 평균(50% 내외)의 4배를 넘는 222.4%에 달했다.
필립스 사장은 이 공을 부인에게 돌린다. 그는 "지난해 부동산 강연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는데 이는 '한국 사람은 부동산에 관심이 많으니 관련 이벤트를 해보라'는 부인의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보잉코리아의 오벌린 사장도 2000년 1월 이후 7년째 CEO를 하고 있는데 한국인 부인을 만난 뒤부터 성공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오벌린 사장은 "1997년 부인과 결혼해 서울에 오게 된 후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벌린 사장에 따르면 한국에 부임하기 전에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근무했는데 부인을 만나 보잉코리아로 발령을 받은 뒤 3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올랐다. 보잉코리아 관계자는 "오벌린 사장의 부인은 결혼 전 홍콩에서 외환딜러로 명성을 날렸다"며 "요즘도 국내외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부인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미국 재계에서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통하는 제프리 존스 이사장도 한국인 부인을 만난 것이 인생행로를 바꾼 계기가 됐다.
존스 이사장은 눈을 감고 들으면 한국 사람으로 믿을 만큼 정확한 발음으로 "1980년 김&장 법률사무소 초기 멤버로 합류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집사람을 만난 후 한국 정착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포스코 사외이사를 비롯해 직함이 10개가 넘는 등 국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인 부인을 둔 만큼 이들 CEO의 가정생활도 다분히 한국적이다. 집에서는 영어와 한국어가 공용어로 쓰이며, 식탁에는 한국 음식이 주로 오른다.
필립스 사장은 한국인 직원들이 은어를 섞어가며 주고 받는 잡담도 60% 이상 알아듣는다. 그는 "부인과 두 아들 루크(16세), 이안(14세)이 집에서 한국말을 쓰기 때문"이라며 "한국 신문과 잡지를 즐겨 보고 직원들과 한국어로 대화 나누는 게 일상 생활 중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요일 저녁이면 직접 앞치마를 둘러매고 스팸과 버섯을 넣는 자신만의 비법이 담긴 김치찌개도 끓인다"고 덧붙였다.
오벌린 사장은 평소 직원들과 회식 때 소주에 삼겹살, 김치찌개 등 한국음식을 즐긴다. 한국인 부인과 결혼한지 10년째를 맞은 그에게 한국 음식은 생활 그 자체가 된 셈. 그는 스스럼 없이 "한국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한다.
자녀 교육이나 여가생활도 여느 한국의 중산층 가정과 차이가 없다. 필립스 사장은 주말을 온전히 가족을 위해 투자한다. 사진 찍기를 즐기는 부인과 레저 스포츠를 좋아하는 두 아들을 대동하고 수도권과 지방을 여행하며 여가를 보낸다.
존스 이사장은 아이들을 위해 매주 금요일에는 절대 저녁약속을 잡지 않는다. 7세와 5세인 두 아들과 함께 밀가루를 반죽해 과자도 만든다. 그는 특히 "두 아들이 군대에 갈 나이가 되면 한국 국적을 유지시켜 입대 시키겠다"고 말할 정도로 한국식 교육에 철저하다.
한편, 이보 마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장과 빌 라일 PCA 대표는 "한국인 부인과 행복하게 지내고 있으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은 싫다"며 "가족 얘기를 자세하게 해 줄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 역시 한국인 부인의 내조 덕분에 '행복한 가정'과 '활기찬 회사'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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