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에서 내 이야기는 다 빼라.”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최근 사보 제작팀에 이런 지시를 내렸다. 사보 소식란에 자신의 동정이 너무 많이 실린 것을 보고 한 말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제5공화국 시절 저녁 9시 뉴스가 ‘땡 전 뉴스’라 불렸듯 사보 소식란은 대개 회장이나 사장 동정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라며 “허 회장의 지시는 권위 의식을 버리고 임직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허 회장은 지난달 과장 차장 부장 승진자들의 가족에게 손수 축하 편지를 보냈다.
CEO들이 부드러워진다
서열과 권위 의식을 내 세우지 않고 스킨십을 통한 감성 경영에 주력하는 최고경영자(CEO)가 늘고 있다.
부드러운 CEO의 원조는 이동호 대우차판매 사장이다. 이 사장은 한 번 인사한 직원은 아이들의 이름까지 모두 외울 정도로 세심한 CEO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그가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개인 홈페이지 ‘이동호의 사이버 포장마차’(ceo.dm.co.kr/index.jsp)는 늘 만원이다. ‘오늘 한잔 어때요’ 코너에는 전국 영업소에서 CEO를 유치하기 위한 술자리 신청이 쇄도한다. ‘사장님, 얼굴을 잊어버릴 것 같다’, ‘사장님이 한번 방문해 주면 차를 2배로 더 잘 팔 자신이 있다’, ‘대게가 제철을 맞았는데 사장님과 함께 먹고 싶다’ 등 직설적인 제안이나 애교 섞인 호소 등이 많다. 또 ‘취중진담’ 코너는 사장과 직원이 1대 1로 대화하는 비밀 창구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장은 연말이면 진짜 포장마차를 준비,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조리한 음식을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스킨십 경영은 자연스런 일상이다. 박 회장은 연초 신입사원들과 등산을 한 데 이어 14일에는 국내 및 해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그룹 계열사 7,900여명의 전체 여직원들에게 사탕과 초콜릿 등이 담긴 깜짝 선물을 했다. 선물 은색 리본에는 ‘다가오는 새봄과 같이 활기찬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라는 박 회장의 메시지가 담긴 하트 모양의 카드도 담겨 있었다. 박 회장은 아시아나항공 사장으로 있던 때부터 특별한 날에는 사탕, 더운 여름철에는 아이스크림 등을 여직원들에게 선물해왔다.
서영태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매년 이맘때면 전국 사업장을 돌며 한 해의 경영 실적을 직접 설명한다. 올해도 15일부터 5곳의 전국 사업장을 순회 중이다. 투명 경영을 위해 경영정보를 숨김없이 공개하는 것은 물론, 직원들과 스킨십을 쌓기 위해서다. 주유소 소장에서부터 현장사원 영업사원 수습사원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정해진 일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에 비중을 둬 질서와 서열이 중시됐었으나 최근에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장려되면서 부드러운 CEO가 선호된다”며 “여직원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 앞으로 이런 경향은 더 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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