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개교 때부터 숱한 화제를 낳은 고교가 있다. ‘학교 공식 행사를 전부 영어로 진행’ ‘앙드레 김 교복’ ‘합격자 토플 평균점수 269.2점(CBT 300점 만점 기준)’.
지금도 그렇다. ‘영어신문 보며 영어토론’ ‘전 교정 무선랜 사용’ ‘책 트렁크 끄는 학생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화제거리를 낳고 있는 경기 용인시 한국외대부속외고는 올해 신입생을 받고 전 학년 정원을 처음으로 다 채우게 됐다. 교정에서 만난 3학년 학생에게 “학교가 언론에 많이 나와 좋겠다”고 하자 여유만만한 웃음과 함께 “뉴스가 나오는 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일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제 날 때가 왔다”
남봉철 교장이 올해 새 학기를 맞는 기분은 예년과 다르다. 개교 신입생으로 들어왔던 현 3학년 학생들이 올해 본격적으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수시ㆍ정시모집을 하는 국내 대학은 물론이고 외국 대학도 진학 가시권에 들어있다. 남 교장은 최근 교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는 올해만큼은 교장이 아니라 ‘3학년 부장’이다”고 말했다. 진학 지도에 올인하겠다는 뜻이다.
새 학기 들어 국제반 학생의 진학을 책임질 국제진로부(ICA)가 갖춰졌다. 이른바 ‘원스톱 유학지도’ 체제다. ICA는 주로 영어과 교사와 원어민 진학상담 교사(College Counselor) 등 10명으로 구성됐으며, 담당 교사들은 저마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기록해 둔 파일을 정리하고 해외 명문대 진학 정보를 파악하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또 입학에 필요한 서류 작성이나 자기소개서 작성 등도 도울 예정이다.
김경훈(영어) 국제진로부 교사는 “사설 유학원에 의존하지 않고 교사들이 직접 제자의 진학을 도울 것”이라며 “학교가 저마다 요구하는 인재 유형이 달라 ‘공부’해야 할 게 많다”고 말했다. 3학년 재학생 중 해외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은 100명이 조금 넘는다.
제도가 크게 바뀌는 올해 국내 대학입시도 소홀할 수 없다. 전형 요소 중 당락에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논술 교육을 대폭 강화했다. 글쓰기 문학 사회 철학 등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모여 ‘드림팀’을 꾸려 논술문 첨삭과 배경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측은 올해 주요 대학들이 학업 성적 외에 다양한 특기와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감은 대단하다. “어떻게 뽑아도 문제 없다”는 태도다.
말 뿐인 ‘글로벌’은 가라
GMC, GLM, GE. 외부 사람들은 알 듯 모를 듯한 영어지만 외대부속외고 학생에게는 낯익은 명칭들이다. 세 단어의 첫 글자인 ‘G’는 공통적으로 ‘글로벌’을 뜻한다.
GMC는 전교생이 생활하는 기숙사 이름이며, ‘글로벌 매너 센터(Global Manners Center)’의 머릿글자다. 장차 글로벌 리더로서 필요한 에티켓을 익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곳이라는 의미다. 영어과 2학년 황은규 양은 “밤늦게 공부를 더 하려고 해도 다른 친구를 위해선 제 시간에 불을 꺼 줘야 한다”고 귀띔했다. 보통 두 학생이 방을 함께 이용하며 드문 경우 독방을 쓰기도 한다. 입학 후 처음 한 학기는 반 번호 순으로 방을 배정하고 나머지 학기부터는 추첨으로 정한다.
기숙사 안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조직이 '글로벌 리더 모니터(GLM)’다. 한 학년에 스무 명 가량이 참여하는 GLM은 친구들의 복장을 단정하게 매만져 주거나 식당에서의 질서 유지 등을 맡는다.
해외체험활동(GE)은 이 학교 1학년 학생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행사다. 여행지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7월 아프리카 북부의 한 시골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학생들은 여전히 그 때를 잊지 못한다. “한국을 모르는 어린이에게 지도 속 한국을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해 줬다.”(일본어과 2학년 박순종군), “가난으로 고생하는 아이를 보며, 나중에 경제컨설턴트가 돼 후진국의 경제 원조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영어과 2학년 송진우) 일본어과 조경진 양은 “좁았던 시야를 많이 넓힐 수 있던 기회라 매우 소중한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2008년 외대부속외고 대학 진학 성적표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용인=박원기 기자 one@hk.co.kr
■ 박하식 교감 인터뷰/ "목표는 글로벌 톱10… 설립취지 존중을"
개교 3년 째인 외대부속외고의 박하식 교감은 최근 더욱 분주해졌다. 예전엔 책도 펴내고 교육 관계자들도 만나러 다녔지만 지금은 “학교 일만 해도 바쁘다”며 다른 일은 뒤로 제쳐놓고 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아무래도 3학년들의 진학 문제다. 100명이 넘는 학생이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과 다른 유수의 명문대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고, 250여명은 국내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다. 박 교감은 “진학지도 경험이 풍부한 석ㆍ박사급 교사 17명을 새로 채용해 명실상부한 전 학년 체제를 갖췄다”며 흡족해 했다.
교무실 창 밖엔 이번 달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이 공을 차고 있었다. “이번엔 입학 경쟁률이 좀 떨어졌다”며 ‘살짝 찌르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올해도 우수 학생들이 대거 지원한 것은 변함이 없었고, 우리 학교에 정말 오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소신 지원해서 좋았다.”
신입생 선발은 어느 학교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문제다. 현행 교육인적자원부 방침대로라면 외대부속외고는 2010년부터 경기 이외 지역 출신 학생은 모집할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 각지에서 학생을 선발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도록 하고 있다. 박 교감은 “수백억원을 들여 기숙사를 완공한 의미가 무엇이겠냐”며 “우리 학교의 설립 취지를 교육부가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교감은 자타가 공인하는 ‘글로벌 교육 전도사’다. 2005년 개교 때부터 지금까지 초대 교감으로 일해오면서 학생들에게 글로벌 마인드와 리더십을 가르치고 학교가 안정적으로 뿌리 내리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엔 모 호텔 관계자들을 불러와 학생들에게 ‘테이블 매너’ 특강을 받도록 했을 정도다.
지금도 그의 바람이자 학교의 생각은 해외 명문대에서 공부하고 싶어하는 국내의 우수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켜 키워내는 것이다. “우리 목표는 처음부터 ‘글로벌 톱 10 고교’가 되는 것이었다”는 그는 ‘글로벌 인재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한 마디로 세계를 경영할 수 있는 인재”라고 강조했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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