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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탐정이 몰려온다/ 국내시장 3조원…수준은 아직 걸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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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탐정이 몰려온다/ 국내시장 3조원…수준은 아직 걸음마

입력
2007.03.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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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민간조사(PI)업체를 운영하는 L(45)씨의 요즘 주요 고객은 스카치 위스키의 대명사격인 양주 제조업체다. 시장이나 유흥업소에 ‘가짜’가 유통되는 것을 제보하는 대가로 월 800만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다른 미국의 사무기기 제조업체로부터 월 800만원, 일본의 전자회사로부터도 500만원의 계약을 맺고 있다. ‘짝퉁’이나 ‘카피’ 가 출현해 본사에서 PI들이 날아오면, 용산전자상가나 남대문 인근에 캠프를 차려놓고 몇 주일씩 합동 조사를 한 뒤 수천만원 대 프로젝트비를 받는다.

L씨의 업무는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PI, 즉 탐정의 전형적인 형태다. 음습한 사생활 뒷조사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다. 2004년 루이뷔통 사건은 이런 현대 탐정업무의 위력이 발휘된 사례다. 루이뷔통사는 자사 로고가 찍힌 ‘짝퉁’ 제품을 팔던 국내 중소 유통업체 90여 곳에 내용증명을 보내 상표권 사용을 중지하고 500만원씩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프랑스 회사가 뭘 알겠어”라고 뒷짐을 지던 업체들은 모두 백기를 들었다. 변호인 단이 제출한 증거자료가 완벽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에 관여했던 한 변호사는 “우리는 소장(訴狀)만 작성하면 될 정도로 누군가 샅샅이 조사를 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21세기 한국 탐정은 이제 흥신소 수준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업무는 엄격히 말하면 불법이다. 우리나라에선 탐정이란 말을 쓰는 것은 물론, 민간인이 소송 등 법률행위를 전제로 조사행위를 하는 것이 모두 불법이다. 따라서 올해 국회에 계류중인 민간조사업법이 통과되면 PI들은 물론, 우리 기업이나 개인 실생활에 커다란 변화가 오게 된다.

합법화 이후의 한국의 PI시장이 3조원 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은 근거가 있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현재 보험사기는 2조~2조4,000억원에 달하는데 적발은 2006년 기준 3만4,567건에 2,490억원 즉 10%에 불과하다. 현행 보험법상 보험조사관들은 목격자 등 제3자 조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지만, 자격을 갖춘 PI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적발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인력송출업체들이 주로 맡고 있는 카드회사의 미납자 소재확인도 PI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면 PI 업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월가의 기업과 무기제조업체를 고객으로 가진 크롤(KROLL) 등이 활개치는 무대가 된다. 이 회사의 브라질 지사는 2004년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는데, 한 통신회사의 의뢰로 인수합병에 대한 조사를 하던 중 룰라 대통령 측근의 이메일까지 검색했다고 폭로됐기 때문이다. 경비 분야에선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보안업무를 맡고 있었다. 최근에는 남미의 헤로인 밀수 추적업무까지 뛰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르윈스키 스캔들을 처음 조사한 사람, 클린턴 부부의 의뢰를 받고 역으로 르윈스키를 조사한 사람도 모두 PI였다.

정보를 지키고, 수집하고 관리하기 까지 종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업체와 이제 발아기를 맞은 국내 업체와의 경쟁력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막강한 이들 외국 PI들은 외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있다. H&A의 전승훈 지사장은 “3~4장 짜리 보고서면 사업거래를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H&A는 지난해 미국의 한 금융회사가 중견 제조업체에 투자하려던 계획을 보류시켰다. 대주주 가운데 한 사람의 전력에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결국 이 주주가 지분을 포기한 뒤에야 투자는 진행됐다.

외국의 우리 기업에 대한 정보 수집력은 막강한 반면, 그 반대로 우리 기업의 해외에 대한 조사력은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팀원시큐리티 존 안 대표는 “우리기업은 해외정보를 얻을 때 친분관계에 의존하거나, 자체 조사인력을 동원한다”면서 “중국 등지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것도, 미국과의 협상에서 밀리는 것도 전문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획 취재팀 유승우팀장 swyoo@hk.co.kr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 전세계에 탐정 동업자, 인터폴 수사망보다 촘촘

민간조사원(PI)의 강점은 전 세계에 걸쳐 있는 네트워크다. 어느 나라든 웬만한 도시에는 탐정 동업자들이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락망은 때로 인터폴 수사망 보다 촘촘하다.

2005년 국내의 PI 업체인 ‘디텍티브’는 유명 청바지 브랜드의 모조품 유통 경로를 찾아 나섰다. 요원들은 우선 동대문, 남대문 시장에서 청바지 모조품을 대량구입 하려는 중간 상인으로 위장해 탐문조사를 벌였다. 이른바‘미끼 던지기’다. 물류창고 위치, 수입업자 등을 거꾸로 파악한 결과 모조품이 중국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요원들은 세계탐정협회(WAD)를 통해 홍콩에 있는 PI를 접촉, 조사를 재의뢰했다. 중국공안의 베테랑 형사 출신인 홍콩PI는 선양(瀋陽)에 있는 생산공장까지 알아냈다. ‘디텍티브’는 2개월 여 만에 중국 해안에서 남대문 시장에 이르는 불법제품의 유통경로를 파악, 사진 등 증거자료와 함께 의뢰인인 법무법인에 넘겼다.

PI의 조사 방식은 기소나 처벌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유연하다. 경찰 수사관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을 사건, 재판소에 갈 경우 수년이 걸릴 사건들을 손쉽게 풀기도 한다. 지난해 7월 이탈리아 국적 한국인이 국내 유통업체 B사에게 가짜 이탈리아 명품 의류를 보내고 14억원을 챙겼다. B사는 수사기관 대신 PI에 사건을 의뢰했다. 한국으로 걸려온 전화번호를 통해 용의자가 독일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독일의 PI는 의뢰 일주일 만에 용의자가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 국내 송환 대신 손해배상을 해준다는 합의를 받아냈다.

국제적인 사설탐정 네트워크 조직도 잇따라 생겨나고 있다. 처음에는 탐정들간의 품위 유지와 친목, 기술개발 등을 위해 단체들이 생겨났지만, 국제범죄나 기업업무 등 국경을 넘나드는 의뢰가 점차 많아지면서 정보공유와 업무공조를 위해 가입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WAD는 가장 큰 네트워크 중 하나다. 기존의 세계탐정협회와 국제경호협회를 합쳐 1950년 창설한 세계경호협회가 시초다. 회원사는 전세계 80개국, 150여 개 업체에 이른다. 이 밖에도 세계적 규모의 탐정네트워크도 10여 개에 이르며, 서로 경쟁관계에 있다. 국제조사네트워크(Intelnet), 세계탐정협의회(CII), 미국산업보안협회(ASIS) 등이 규모나 활동성 측면에서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들 네트워크의 정회원 인증을 받은 PI들이 생겨나고 있다.

공조조사가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부분은 앞선 사례와 같은 ‘해외도피사범 소재파악 및 송환 자문’이다. 그러나 확장하는 분야는 ‘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현지 시장성조사’다. PI업체인 팀원시큐리티의 존 안 대표는 “외국 글로벌 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 전에 외부조사기관의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으나, 한국 기업들은 대부분 자체 법무팀이나 해외지사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은퇴자… 대학생… 탐정 창업열기 뜨거워

“교통사고 현장에 남는 스키드 마크(타이어 흔적)는 20여가지나 됩니다. 우선 전형적인 마크는…”

11일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에이스타워2차 지하1층 강의실. 머리 희끗한 60대 어르신부터 대학 교수, 20대 청년까지 18명이 모여 강의를 듣고 있다. 한국민간조사협회(www.pikorea.co.kr)에서 실시하는 민간조사원(PI) 제19기 교육 현장이다. 오전 강의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교통팀 조사관인 유장석 박사의 교통사고조사개론, 오후에는 국방부 군수사관의 강의가 이어졌다.

협회는 일요일마다 8시간씩 총 8주간 기업회계부정조사, 지문감식 등 이론 강의와 현장 실습 교육을 한 뒤 합격자에게 PI 자격증을 발급한다. 이는 공인자격증이 아니라 일종의 사교육 수료증일 뿐이다.

그런데도 연수생들의 열기는 뜨겁다. 올해 안에 우리나라에서도 PI제도를 합법화하는 법이 통과하고, 국가자격증을 가진 조사원들을 위한 신천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은퇴자는 제2의 인생, 주부는 소액 창업, 젊은이는 새 직장의 희망을 PI 제도에 걸고 있다. 이 협회에서 자격증을 받아간 사람만 벌써 400명이 넘었다. 몇 해 전까지 유통업체를 운영했던 박명석(67)씨는 “뭐든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 시작했는데, PI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보험사고 조사 관련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 김영진(24)씨는 “교육은 일요일에만 있지만 강의 후에 개인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아예 학교를 한 학기 휴학했다”고 말했다. K신용정보회사 직원인 이선정(29ㆍ여)씨는 “어릴 적부터 탐정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연히 PI란 직업을 알게 된 뒤 경험을 쌓기 위해 직장도 신용정보회사로 옮겼다”면서 “언젠가 PI 회사를 차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행정자치위원회에,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 발의법안이 운영위원회에 계류돼있는데, 행자위의 경우 4월 중 공청회를 열어 각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이상배 의원실 정호윤 비서관은 “현재 분위기로는 올해 정기국회에 본회의 처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도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찰청은 29일 이상원 용인대 교수(경찰행정학), 문성도 경찰대 교수(법학) 등 8명이 참여하는 전문가 간담회를 열기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찰청 수사과 한상훈 경감은 “1999년 하순봉 전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을 때만 해도 부작용 때문에 반대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국가기관에서 법적 분쟁을 다 감당하기에는 부하가 너무 커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도 대검 미래기획단에서 PI 합법화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검ㆍ경뿐 아니라 국가정보원, 소방방재청 등에서도 관심이 높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수사인력의 퇴직 후 취업을 위해서다. 수많은 수사관들이 해마다 은퇴하지만, 이들에게 열린 재취업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수사관들이 법무사 사무실을 차리고 나가던 코스도 어려워진 지 오래”라면서 “조직의 활성화차원에서 합법화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손해보험업계에선 PI가 합법화하면, 수사기관의 막대한 예비인력, 양성화할 흥신소 등의 인력을 감안할 때 30만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호사 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미 지난해 국회 행자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변호사 등 직무의 침해와 이로 인한 갈등 초래 ▦개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 ▦ 퇴직공무원들의 생계수단 마련으로 전락할 가능성 등을 들어 ‘절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PI 자격시험을 어느 기관에서 관장할 것인가도 논란거리다. 이상배 의원측은 경찰청을, 최재천 의원안은 법무부를 각각 관할기관으로 지정했는데, 벌써부터 검ㆍ경 양측의 신경전이 치열해 자칫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밖에 현재 법안에는 PI 업무를 ‘범죄 및 위법행위와 관련된 조사’ 등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규정돼 있어 수사기관의 업무와 충돌할 수 있고 사생활 침해 등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한 점 등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 세계 첫 탐정기업은 1850년 美 핀커튼社

탐정의 대명사는 셜록 홈스겠지만, 탐정기업의 역사적 효시는 1850년 미국의 알랜 핀커튼(사진ㆍ1819~1884)이 시카고에서 변호사 에드워드 럭커와 설립한 노스웨스트 경찰대행사다. 훗날 핀커튼 전국탐정회사(Pinkerton’s National Detective Agency)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의 로고는 큰 눈과 “우리는 잠들지 않는다”(We never sleep)였다. 미국에서 속어로 사설탐정을 private eye로 부른 연유다.

핀커튼사는 처음부터 기업의 이익을 지켰다. 초기에는 대륙횡단 철도에 대한 강도사건을 해결했다. 당시 미국의 금융자본은 철도회사와 은행업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핀커튼은 이 때 링컨 대통령을 알게 됐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알랜 소령이라는 가명으로 북군 정보국 국장을 맡아 남부군에 스파이를 잠입시키고 링컨에 대한 암살활동을 좌절시키는 등 공작활동을 폈다. 탐정기업들이 정보수집과 경호 경비 등 종합 보안서비스 제공하는 전통도 여기서 비롯됐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는 노조활동을 탄압하는 주역을 맡았다. 1892년에는 300명의 핀커튼 탐정들이 노조원을 공격해 11명이 사망한 홈스테드 스트라이크 사건을 일으켰다.

핀커튼은 제시 제임스와 같은 유명한 무법자를 추적하기도 했다.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인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를 볼리비아 까지 쫓아간 것도 핀커튼 탐정들이었다. 이 회사는 2003년 스웨덴의 보안회사인 시큐리타스에 경쟁사인 번스탐정회사와 함께 매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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