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미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위임 받은 신속무역협상권(TPA) 시한에 맞추느라 3월말 협상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막판 휘몰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워싱턴에서는 19일부터 김종훈 우리측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측 수석대표가 참석하는 전체 고위급회의와 함께 섬유분야 고위급회의가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다.
●대통령은 실익 위주 강조
이 민감한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철저하게 실익 위주로 면밀히 따져서, 이익이 안되면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 “우리가 (미국의) 신속협상절차 안에 하면 좋고, 그 절차의 기간 내에 못하면 좀 불편하더라도 그 이후까지 지속해서 갈 수 있다”며 일종의 협상지침을 제시했다.
대통령으로서는 시한에 쫓겨 졸속 협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이러한 발언을 해둘 필요가 있었을 것 같다. 또 우리 대표팀의 막판 협상력을 조금이라도 높여주려는 의도도 작용했을 듯하다.
그런데 협상 관련된 일로 최근 몇 주 사이에 워싱턴을 방문한 인사들을 통해 감지되는 분위기는 이런 냉철함과는 사뭇 다르다. 민감한 협상 분야에 관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독려 강도를 묻는 질문에 “다 내주고라도 타결하라고 한다”며 고충이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물론 얼마간 과장된 표현이었을 것이고 다 내주는 협상을 할 리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한미 FTA를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는 청와대의 압박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 귀띔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청와대 참모들의 주문이 이처럼 고압적 수준이라면, 우리의 이익에 반하는 한미 FTA체결 포기불사를 시사한 노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은 그만큼 훼손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 참모들의 생각이 어디에 가 있는지는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의 2월 방미에서도 일단이 드러났다. 백 실장은 당시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잇따라 만나 한미 FTA가 타결되면 한미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되는 만큼 한미 정상회담을 열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협상 관련자는 다른 분위기
당연히 청와대가 한미 FTA를 대통령 업적 차원에서 다루면서 그 정치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정상회담이라는 큼직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뒤따랐다. 우리 외교 당국자들은 나중에야 아차 싶었던지 정상회담과 한미 FTA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백 실장의 말을 주워 담았다.
결과적으로 한미 FTA체결이 노 대통령의 업적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반대가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의지를 갖고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업적을 진짜 업적으로 만들기 위해, 즉 한미 FTA를 성공시키기 위해 앞으로 바쳐야 할 땀과 노고는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한미 FTA는 무조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국민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고태성 워싱턴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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