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헌석 / 실천문학사"이 소설을 쓰기 위해 여태껏 살아왔다"
김영삼 정부 출범 직후 1993년 3월 19일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당시 76세)가 북송됐다. 한국전쟁 인민군 종군기자 이인모는 지리산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 붙잡혀 34년간 투옥됐다.
김대중 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 후인 2000년 9월 2일 다른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송됨으로써,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종결됐다. 그러나 그 질곡은 그들 후대의, 현재의 삶에까지 아직도 큰 상흔을 남기고 있다. 소설가ㆍ신문기자인 양헌석(51)의 자전적 장편소설 <오랑캐꽃> 은 그 상흔의 기록이다. 오랑캐꽃>
소설은 비전향 장기수로 19년을 복역한 아버지를 둔 남매의 이야기다. 육체적ㆍ정신적으로 무기력한 오빠 윤기립, 강한 의지로 연좌제의 덫을 벗어나려는 동생 윤지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경제적 연좌제’를 만든 IMF사태로 가족을 잃는 윤기립, 소설가로 또 신문기자로 삶을 헤쳐나가지만 부조리한 세상에 결국 좌절하는 윤지원. 15년 만에 면회를 간 아들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가장 난감한 일은 내 가치관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야. 얼마나 이 아버지를 부정하고 싶었겠니…”
윤기립과 윤지원은 실은 작가 양헌석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충돌해온, 같은 생의 두 얼굴이다. 2003년 미국 출장길에, 한 신문사 특파원이었던 그를 오랜만에 만나 사흘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그 몇 달 후 한국으로 와 이 책을 출판한 그는 “이걸 쓰기 위해 여태껏 나는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고백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의 근황이 궁금하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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