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를 성폭행하려다 실패한 피의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현행 형법에는 미성년자 성폭행 미수와 관련된 조항이 없어 처벌 가능 여부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18일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려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에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학원버스 운전사 A(37)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형법은 강간 및 강제추행 등의 성범죄는 물론 그 미수범도 처벌하는 규정(300조)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를 다룬 형법 305조는 ‘13세 미만의 부녀를 간음하거나 13세 미만의 사람에게 추행을 한 자는 297조(강간), 298조(강제추행), 301조(강간 등 상해ㆍ치상) 또는 301조의 2(강간 등 살인ㆍ치사)의 예에 의한다’고 돼 있을 뿐 ‘미수범은 처벌한다’는 300조를 인용하지는 않아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관련 규정이 형법 300조를 명시적으로 인용하지 않고 있지만 미성년자 성폭행 처벌 조항의 입법 취지는 미수범에 관해서도 강간죄와 강제추행죄의 예를 따른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이 판결이 형벌 법규의 명확성 원칙에 어긋나거나 죄형법정주의가 금지하는 확장ㆍ유추 해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2005년 4월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을 학원 차량으로 데려다 주면서 마지막에 남은 11세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하려다 실패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는 진술의 신빙성 등 때문에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 뉴스 인&아웃
사법부가 아동 성폭행 범죄에 대해 최근 잇달아 엄벌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법원이 형법의 입법 취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미성년자 성폭행 미수범도 처벌할 수 있도록 못박은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일환이다.
국가청소년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 피해자수는 2002년 434명, 2004년 577명, 지난해 774명 등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이 중 강간ㆍ추행 사건은 지난해의 경우 78건이나 발행했다. 아동 성폭행 범죄가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는 시민사회의 경고가 사법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동 성폭력의 경우 다른 범죄에 비해 재범율이 매우 높다. 실제 강도강간죄로 19년을 복역하고 특사로 풀려난 40대 남자가 1년 만에 미성년자 4명 등 9명 성폭행, 12차례 강도 행각을 하다 1일 검거됐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지난달 사춘기 이전의 소아(小兒), 특히 여자 아이에 대해 성인 남성이 성적(性的)으로 집착하는 증상인 ‘롤리타 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주장해 항소심서 형량이 줄어든 연쇄 성폭행범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관심을 끄는 것은 두 건의 아동 성폭행 범죄 사건의 주심이 검찰 출신의 안대희 대법관이라는 점이다. 대검 중수부장, 서울고검장을 거치며 일선 수사 현장감을 잘 아는 그가 대법원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최영희 국가청소년위원장도 얼마 전‘안 대법관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쓴 언론 기고문에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아동 성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우고 아동청소년 성보호를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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