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중국의 CCTV는 15세기 이후 세계를 제패한 열강의 흥망사를 다룬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 ‘대국굴기(大國崛起)’를 방영, 13억 중국인들의 가슴을 사로잡았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러시아(소련) 미국이 차례로 점한 그 자리에 이제 중국이 ‘대국으로 일어설 때’라는 메시지가 담긴 특집물이었다. 그 방영시간대엔 교통량이 현격히 줄어들 정도로 신드롬이 연출됐다고 한다. 지난 1월 EBS를 통해 국내서도 소개된 ‘대국굴기’ 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필람을 권해 더욱 화제가 됐다.
▲ 금년은‘중국 개혁ㆍ개방의 총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 사후 10주기(2월19일)를 맞는 해. 이 같은 맥락을 감안해 제작된 듯한 이 특집물을 통해 중국 지도부가 전하고자 한 것은 16일 폐막된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5차 회의의 결과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사유재산을 국ㆍ공유 재산과 동등하게 보호하는 물권법을 97.3%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키면서 “정부의 모든 권력은 인민이 부여하고 인민에 속하고 인민을 위한 것이므로, 모든 것을 인민에게 의지하고 모든 공은 인민에게 돌려야 한다”(원자바오 총리)고 선언한 것이다.
▲ 1993년 초안이 만들어져 추진돼온 이 법은 “체제의 근본을 위협한다”는 반대논리에 막혀 지난해까지 번번이 좌절됐다. 올해는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등 시장경제의 폐해에 따른 ‘페이덩(非鄧)’분위기까지 겹쳤지만, 지도부는 이 법안을 사실상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균부론과 조화사회, 즉 공평분배라는 또 하나의 축에 대한 여러 시책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78년 이후 도광양회(韜光養晦ㆍ능력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름)-화평굴기(和平崛起ㆍ평화적으로 일어섬)-유소작위(有所作爲ㆍ적극적으로 할 일을 함)로 이어진 개방의 결실을‘대국굴기’로 빚어내자는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 전인대 기간 중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지역 대표단을 만나 ‘우환(憂患)의식, 공복(公僕)의식, 절감(節減)의식’을 앞세워, 당과 정부의 쇄신을 촉구한 것도 관심을 끈다. 세계 4위의 경제대국에 안주하지 말고 인민에 봉사하는 겸허함과 근면성으로 향후 닥칠 어려움에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다.
당정 간부들에게 ‘늘 많이 듣고 적게 말하며 직무에 힘쓰라’는 뜻으로 ‘多聽ㆍ少話ㆍ務實’을 강조해온 원자바오 총리는 폐막회견에서 “관리는 인민의 좋은 공복이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권력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정말 대국으로 일어설 모양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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