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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非유럽인에게도 베를린장벽 붕괴가 영향 줬을까"…'제3세계의 시선으로 본 2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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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非유럽인에게도 베를린장벽 붕괴가 영향 줬을까"…'제3세계의 시선으로 본 20세기'

입력
2007.03.1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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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야만 / 클라이브 폰팅 지음ㆍ김현구 옮김 / 돌베개 발행ㆍ712쪽ㆍ3만원

새 밀레니엄 맞이로 전세계가 떠들썩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시나브로 20세기의 사건들이 세월 속에 박제화하고 있다. 지난 세기를 다룬 역사서가 산처럼 쏟아져 나왔지만 연대기적 사실의 나열이나 맥락을 자른 단편적 설명으로 독자에게 허탈감을 안겨주는 것도 적지 않다.

웨일스대 정치학과 교수 클라이브 폰팅의 <진보와 야만> 은 두툼한 두께에 걸맞게 이 같은 아쉬움을 잘 달래준다. 생산의 비약적 증대, 기술 진보, 여성의 지위 변화 등을 고찰한 경제사와 사회사, 몰락하는 제국주의와 발흥하는 민족주의 등을 다룬 국제사, 독재와 파시즘 차별 등에 주목한 국내사 등으로 책은 크게 나눠진다.

체제만 언뜻 살펴보면 기존의 역사서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지만 ‘보편성’이라는 잣대로 지난 세기를 살피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런 성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책의 서문이다.

그는 “서유럽과 북미의 잘사는 나라들의 교양 있는 중산층 시민들의 경험은 20세기에 대다수 인구가 겪은 전형적인 경험과는 다르다”며 “모든 곳에서 가장 공통된 20세기 인류의 경험은 농민으로서의 경험일 것이며 이 범주에서 최대 단일집단은 중국의 농민들”이라고 적고있다. 저자의 호언장담대로 ‘유럽인이 쓴 책 맞아?’ 라고 다시 보게 되는 대목도 많다.

가령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의 좌파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과 베를린장벽이 붕괴한 1989년이 20세기의 성격을 획정했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유럽 밖에서 이 사건들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이나, 1973년의 오일쇼크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전역에 충격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의 탈식민지론도 독창적이다. 표준적인 서양사는 ‘2차 대전 후 제국주의가 무너지고 각 식민지들이 독립했다’는 식으로 간략하게 언급하지만 이책에는 독립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의 외적동인과 내적동인이 상세하게 묘사된다.

지은이는 탈식민지 과정을 설명하는데 식민지시대 인도인의 정치적 구심점이었던 국민회의당의 권력구도를 끌어 들이기도 하고 아프리카 골드코스트(현 가나)가 독립하기 전 군벌들의 역학구도도 동원한다.

산업화하고 부유한 중심부 권력과, 그 중심부에 종속된 주변부를 평가하는데 균형감각을 유지하려한 점,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다.

가령 시민에 대한 국가폭력사를 묘사한 ‘억압’ 장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나치의 억압정치, 스탈린의 전제정치,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에서 벌어진 일들이 대표 사례로 언급되지만 폰팅은 많은 부분을 시민충성서약 프로그램 등으로 감시체제를 운영한 미국의 매카시즘을 비판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분량 때문에 문화사, 종교사 부분이 빠진 부분이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가장 가까웠던 우리의 삶을 다양한 시선으로 통찰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 같다. 지은이가 자백했듯 그것이 ‘다소 황당한 관점’이라 해도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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