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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변화시키는 늦깎이 신입사원 / "몇년도 입사?" 물어보면 이제 촌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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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변화시키는 늦깎이 신입사원 / "몇년도 입사?" 물어보면 이제 촌스럽죠

입력
2007.03.1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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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험 풍부해 일처리 노련… '능력 중시' 기업 구조개편 견인차

30대 중반, 40대 초반의 중고 신입사원들은 직장의 오랜 관행을 없애는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대거 등장으로 기업에서는 ‘몇 년도에 입사했느냐’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됐다.

기업들이 나이와 근속 연수 기준으로 직원의 임금ㆍ지위를 결정하는 기존 연공서열형에서 능력과 실적 위주의 성과형으로 급격히 바뀌는 데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의 조직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기업들은 조직시스템을 팀제 등 수평적 구조로 재편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직급에 따라 여러 단계의 명령과 지휘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는 기존의 수직적 구조에선 중고 신입사원들이 나이 어린 선배ㆍ상사와 부딪힐 여지가 많지만, 수평적 구조에서는 명령 체계가 최소화돼 중고 신입사원이 더 쉽게 조직에 융화할 수 있다.

풍부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사무실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늦깎이 신입사원들은 다음 4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과장급 새내기-성난 민원인을 양처럼 만들죠

근로복지공단(2004년 연령제한 폐지) 경남 양산지사 고객상담센터 직원 강병수(41)씨는 39세 때인 2005년 11월 입사했다. 입사 1년 5개월째인 그는 깔끔한 업무 처리로 사내에 소문이 자자한 ‘과장급 새내기’다.

부산시 공무원으로 8년간 일한 뒤 서울에서 가방 판매업을 한 ‘짱짱한’ 사회 경험 덕분이다. 입사 전에 민원인과 손님 등을 숱하게 상대해봐 사람 다루는 기술은 거의 ‘부장급’이다.

체납관리팀에서 일하던 지난해 여름, 강씨는 복지공단 양산지사를 발칵 뒤집어 놓은 ‘할머니 사건’을 해결했다. 식당을 운영하던 할머니는 당시 산업재해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연체료 등으로 500만원을 내게 되자, 공단 사무실을 찾아와 “높은 사람 나오라”며 소동을 벌였다.

성난 할머니 앞에 나타난 ‘높은 사람’은 입사 1년도 채 안 된 강씨였다. 할머니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단 돌려보내는데 성공한 그는 이후 며칠간 할머니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설득 작전에 나섰다. “죽어도 절대 안 내겠다”던 할머니는 지금 매달 25만원씩 내고 있다.

강씨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는 “나이 어린 상사가 내 서류를 결재할 때 미흡한 점이 있어도 차마 야단을 못 치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차라리 따끔하게 큰 소리쳐 줬으면 좋겠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늦게 들어온 만큼 입사 동기들에 비해 일찍 퇴직해야 한다는 점도 불안하다.

*민원 해결사- '늙은 얼굴'이 되레 신뢰 줘요

다양한 사회 경험만이 중고 신입사원을 ‘과장급 새내기’로 만드는 건 아니다. 얼굴에 쌓인 연륜 덕에 쏠쏠히 재미를 보는 ‘늙은 막내’도 있다.

한국전력공사(2005년 연령제한 폐지) 충북 서청주지점 설비관리팀의 이정철(37)씨는 전봇대와 전선을 유지 보수하며 정전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정전이 발생하면 전기가 다시 들어오게 하는 일을 한다.

지난해 5월 입사한 그는 팀원 10명 중 입사 순으로 따지면 가장 후배지만, ‘주민등록증을 까면’ 세 번째로 나이가 많다. 얼굴도 늙어 보인다. 입사 초기, 그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머리 모양을 바꾸는 등 “20대 어린 선배들을 모시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이씨는 그러나 언제부턴가 ‘삭은 얼굴’을 자랑스레 내 놓고 다닌다. 20대 젊은 직원의 풋풋한 얼굴보다 연륜이 묻어나는 이씨의 얼굴이 민원인들에게 신뢰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전 피해보상 등 까다로운 민원에 애 태우는 어린 직장 선배들에게 이씨는 든든한 ‘흑기사’다. 어린 선배가 고객 설득에 진땀 뺄 때 뒤에서 조금만 말을 거들어줘도 민원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씨는 “내 얼굴은 민원을 해결하는 업무용”이라며 웃는다. 최근에도 젊은 선배를 대신해, 정전 피해를 본 업소 사장을 설득해 냈다. 그는 “이렇게 내가 민원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나이 든 얼굴 때문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 덕분”이라고도 했다.

*인생 상담가-동료들의 결혼·육아 상담사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의 엄마인 주혜영(37)씨는 지난해 10월 대한주택공사(2006년 연령제한 폐지) 신입사원이 됐다.

1997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98년 결혼한 뒤 8년 동안 전업주부로 지내다 다시 ‘정글’로 돌아왔다. 아이 키우며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한 게 입사에 큰 도움이 됐다.

입사 5개월의 ‘아줌마 신입사원’은 어떤 평가를 받을까. 주씨는 어린 선배들에게 ‘닮고 싶은 인생 선배’다. 주씨가 속한 회계세무과에는 15명의 여직원이 있다. 기혼자는 주씨를 포함해 2명이고 나머지는 20대 중ㆍ후반 아가씨들이다.

“그 나이에 아이까지 키우면서 신입사원이 되다니 대단하다”며 주씨를 부럽게 쳐다본다.

주씨는 여직원들?결혼ㆍ육아 상담으로도 바쁘다. 점심 뒤 수다 시간엔 “어떤 남편을 골라야 하나” “결혼은 꼭 해야 하는 거냐”는 등의 질문 공세에 답하고, “요즘 사귀는 남자가 속을 썩인다”로 시작하는 연애 상담까지 해 준다.

그 때마다 주씨는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친언니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그렇다고 주씨가 막내 역할에 소홀한 건 아니다. 요즘도 항상 제일 먼저 출근하고 가장 먼저 전화를 받는다.

그는 “젊은 여직원들이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기회가 온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좋겠다”며 “열심히 일해 대한민국 아줌마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사무실 조율사-상사에 쓴소리 '늙은 반항아'

성모(36)씨는 지난해 3월 모 공기업(2005년 연령제한 폐지)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다. 대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2년 사표를 내고 사업에 나섰지만 3년 뒤 접었다.

“알코올에 빠져들다 먹고 살기 위해 들어온 곳”이 지금의 회사다. 그는 사무실에서 나이 어린 선배들과 상사의 중재자다. 비록 실패는 했지만 3년간 사업하며 직원들을 이끈 경험이 그를 ‘배짱 좋은 중고 신입사원’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늦봄 퇴근 무렵, 실적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윗사람에게 야단맞은 상사가 “실적을 만회하자는 의미에서 오늘 저녁 회식을 하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라”고 했다.

갑작스런 통보에 직원들의 불만은 컸지만, 화난 상사에게 토를 달지는 못했다. 성씨는 망설이는 어린 직장 선배들을 대신해 “약속 있는 사람도 있으니 다음으로 미루자”고 주장했다.

상사는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하냐”며 면박을 주었지만 결국 회식은 다음 날로 연기됐다.

성씨는 이 때부터 ‘늙은 반항아’로 통한다. 입사 6개월 만에 팀 살림을 챙기는 간사를 맡았다. 그는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고칠 건 고치라고 말해 줄 수 있는 게 진정한 동료애”라며 “입사 전에 직장 경험을 많이 한 덕에 조직에 쉽게 적응했다”고 말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취업 연령제한 폐지로 희비교차-30대 "다시 도전이다" 20대 "경쟁률 오를라"

취업 연령제한 폐지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취업문이 더 좁아진다”며 울상이다. 현재의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는 30대들에겐 취업 기회가 넓어져 희소식이다.

항공기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여대생 서희정(23)씨는 “최근 국내 대형 항공사들이 승무원 채용 때 연령제한을 폐지했다는 소식에 맥이 빠졌다”며 “너도나도 승무원 되려고 몰리면 경쟁률이 더 높아질 테고, 결과적으로 20대 실업자들만 더 늘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견 금융회사 직원 한모(34)씨는 1월부터 공기업 시험학원에 다닌다. 한씨는 “공기업들이 취업 연령제한을 푼 뒤 내 또래들이 많이 입사한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어 다시 시험을 보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좋은 인재를 뽑을 기회가 넓어져 좋다”면서도 “나이와 기수를 중시하는 조직 문화에서 30대 중반의 막내 사원은 조직 화합을 해칠 수 있어 연령제한 철폐 도입이 조심스럽다”는 반응도 보인다.

인사 등 기업에 컨설팅을 해주는 조직혁신네트워크의 홍성근 대표는 “능력과 업적을 중시하는 성과 중심의 사회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연령제한을 없애는 기업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환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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