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권력의 오만

입력
2007.03.16 23:36
0 0

미국 정가에 터진 심상치 않은 스캔들에 눈이 간다. 법무부의 연방 검사 8명이 정치권의 요구와 백악관의 기획으로 해고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조지 W 부시 정권이 새로운 위기에 처했다. 정말이라면 전형적인 권력형 스캔들이다.

지난 해 여름에 1명, 연말에 7명의 연방 검사가 해고됐는데, 이는 앨버토 곤살레스 법무부 장관의 비서실장과 해리엇 마이어스 백악관 법률 담당 고문 사이의 긴밀한 계획과 협의에 의한 것이었음이 당시 이메일 내용으로 확인됐다.

스캔들 초기 백악관측은 해고 대상 검사의 명단은 전적으로 법무부가 작성했으며, 추후 양해, 승인만 했다고 주장했으나 백악관의 주도와 개입이 드러난 것이다.

마이어스 고문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방대법관으로 지명하려던 각별한 측근. 그녀가 관련된 이메일은 연방 검사들의 정치적 성향 문제를 제기하면서 '충성도(loyalty)'에 따라 교체와 유임 대상을 정해야 한다고 돼 있다.

● 부시행정부의 검사 '기획해고'

여기서 충성도란 정권과 공화당에 호의적인 태도를 말한다. 우리에게 대입하면 검찰 체제를 '우리 편' 검사들로 충원해 장악하려 했다, 또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검사들로 검찰을 전면 개편하려 했다는 얘기 쯤 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시도가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직후인 2005년 3월부터 검토됐고, 구상의 원안은 전국의 연방 검사 93명 전원을 바꾸려 했다는 것이다.

검사들이 해고된 표면적인 이유는 업무 태만이나 소극적 태도, 조직 내 불화 등으로 돼 있으나 정치 보복적 인사임이 뻔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각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이 이들의 수사 사건이나 내용에 공통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왔고, 어떤 경우는 부시 대통령에게 특정 검사의 해고를 직접 건의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의혹은 부시 대통령 스스로가 이 과정을 알고 있었는가, 아니면 얼마나 개입돼 있는가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견제와 균형을 원리로 하는 삼권분립 대통령제의 원조 국가이다. 소위 정치 선진국에서 독재적 권력 행태가 있었다는 것이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선거에서 후보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겠으니 권력을 내게 달라고 하지만, 기실 권력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나아가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이 스캔들이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 스캔들은 현실 정치 세계에서 선의의 권력이란 게 정말로 가능한 것인지 하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권력이 끊임 없이 감시되고 의심 받아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재확인하게 된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검찰에 대해 언급한 것이 주목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직 청와대 사정 비서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무혐의 처리된 데 대해 "정권과 대통령을 겨냥하는 것은 좋지만 합법적으로 하라"는 노 대통령의 말은 권력과 검찰 관계라는 관점에서 매우 아슬아슬한 것이었다.

비록 검찰도 '약한 국민의 처지'를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부연이 있었지만, 정권 말기일수록 왕성하기 마련인 검찰의 메커니즘 상 검찰을 향한 권력의 사전 방어 행위로 보일 소지가 충분했다.

● 한국에서도 임기말 '검찰 잡기'

사실 겸손한 권력은 없다. 겸손해서는 권력이 제대로 행사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권력의 속성은 언제나 오만한 것이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오만한 권력은 타락하기가 십상이다.

부시 정권의 이번 위기도 9ㆍ11 테러 사건 이후 국가안보라는 명분을 타고 정권과 정부의 권력과 권한이 강화되고 집중된 부산물이자, 후유증이라고 지적된다.

고금 도처에서 끊이지 않는 것이 권력의 오만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