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묻힌 그대들의 꿈 배낭에 담아 다시 설산으로"
*76년 동계훈련 중 눈사태로 대원 3명 잃어
*老산사나이들 "혼이라도 함께 가자" 눈시울
“또 다녀 오리다. 그대들을 두고 다시 히말라야 설산(雪山)으로 가려 합니다. 30년 전 우리를 벅차게 했던 꿈 불러내 그대들의 혼이 간절히 닿기 원했던 그 곳, 에베레스트로 갑니다.”
16일 아침 초로의 산 사나이들이 설악산에 올랐다. 전날 밤 내린 눈이 설악의 준봉들을 하얗게 덮었다. 비선대 지나 설악골로 접어들며 미끄러운 길을 한참 올라간 산 사나이들은 계곡 옆에 멈추어 섰다. 바로 ‘77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원정을 앞두고 3년 동안 동계훈련을 했던 베이스캠프 자리다.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정복을 꿈꾸던 원정대원 3명이 꽃다운 목숨을 잃은 곳이기도 하다.
김영도(83) 당시 원정대장과 장문삼(65) 박상렬(64) 곽수웅(64) 김명수(63) 김병준(59) 이상윤(59) 이기용(58)씨 등 77원정대원들은 30년만의 에베레스트 재등정을 앞두고 숨진 동료들을 찾았다.
최수남(당시 36세) 동계훈련 대장과 송준송(당시 30세) 전재운(당시 26세) 대원이다. 세계 정상을 밟기 위해 함께 투지를 불살랐던 그들은 원정 1년7개월을 남기고 훈련도중 안타깝게 산화했다.
대원들이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고인들에게 예를 표하는 순간 하늘에서 진눈깨비가 쏟아졌다. 김 대장은 “하늘도 알았나 보다. 우리 대신 눈물을 흘려준다”고 말했다.
당시 에베레스트 원정을 앞두고 내로라하는 산 사나이들이 설악산에 모였다. 76년 2월16일 원정대가 6명씩 조를 이뤄 훈련을 하던 도중 눈사태를 만났다.
설악 좌골 중간 지점이었다. 밤새 너무 많은 눈이 내려 훈련을 중단하고 베이스캠프로 귀환키로 했다. 귀환도중 최수남 대장 조가 눈사태에 휩쓸려 150m가량 떠내려갔고 대원들은 눈에 파묻혔다. 다행히 박훈규(60)씨와 이기용, 김호진(57) 대원은 구조됐지만, 최 대장과 2명은 끝내 눈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김병준씨는 “그때 내린 눈은 재앙이었다. 하루에 1m씩 꼬박 4일을 내렸다. 산골 마을을 지날 때는 지붕 옆에서 걷는 기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사고를 당한 조에서 유일하게 77원정대원으로 에베레스트에 갔던 이기용씨는 “이들의 혼을 배낭에 담아갈 수 있다면 함께 에베레스트에 동행하고 싶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원정대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딛고 77년 9월15일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우뚝 선 고 고상돈(당시 29세) 대원은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설악에서 숨진 동료 3명의 영정을 태극기와 함께 묻었다.
사고 이후 대원들은 매년 2월16일이면 이곳을 찾아 동료의 넋을 기려왔다. 77원정대원들은 에베레스트 등정 30주년을 기념해 한국일보가 후원하는 박영석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합류, 베이스캠프까지 등정하기 위해 31일 출국한다.
추모행사에는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과 이번 원정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촬영할 김석우 감독, 대한산악연맹 강원연맹 소속 구조대원 세 명 등이 동행했다.
설악산=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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