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시‘11월’을 읽으니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이문재 형에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데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최승자 시인의 싯귀로 기억합니다. 가을은 11월이지요. 11월의 가을이지요.
11월은 색깔이 없는 것이 색깔인 달이지요. <11월>이라는 소설도 있습니다. 통독 되기 이전의 동독 작가 롤프 슈나이더가 쓴 장편소설이지요. 공산주의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산당이 작가에게 주는 특권은 포기하지 못했던 레베카. 11월은 그래서 최인훈의 회색인들도 떠오르게 합니다.
서편 하늘/ 한줄기/ 은색 비행운/ 동남에서 서북으로 길다
남쪽 사투리 쓰시던 새어머니/ 오른쪽 귀 위에 나 있던/ 한 올 새치 같다
김포대교 건너며/ 하류 쪽으로 날아가는 갈매기들의/ 하얀 가슴살을 보았다/ 흥건한 놀빛/ 성난 듯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둘째형까지 낳으신 어머니도/ 스스럼없이 오신다는/ 동짓달 제삿날
셋째형네 고층 아파트에 모여/ 마감뉴스까지 다 본 뒤에/ 재배, 또 재배/ 음복, 또 음복
문재 형의 시 <11월> 전문이지요. 저에게도 새어머니가 있고, 어머니가 있습니다. 새어머니에게는 고마워하고 어머니에게는 불쌍해 합니다. 20대의 아들 셋을 두고 돌아가신 어머니, 눈을 감고 계시기나 한 건가요. 문재 형의 <11월>을 저는 ‘둘째 형까지 낳으신 어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한 것으로, 그리고 셋째 형과 문재 형을 낳은 어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남쪽 사투리 쓰시던 새어머니’도 지금은 없다고 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셋째 형 네 집에서 아마 어머니들의 제사를 함께 지내는 모양이지요. ‘재배, 또 재배 / 음복, 또 음복’하였다고 했습니다. 잘못 읽었다면 저의 우둔한 독해력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새 어머니’가 있습니다. 새어머니는 지금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다. 첫째, 둘째 새어머니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아들로 28년을 살았고, 그 이후는 거의 지금의 새어머니의 아들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2월에 어머니의 제사를 지냅니다. 저의 아파트에 모여 ‘음복’하지요. 2월도 색깔이 없는 달, 회색의 달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1월에서 3월로 건너뛰어도 별로 이상할 것 없는 달. 11월도 그렇지요. 10월에서 12월로 건너뛰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달. 혹시 2월과 11월을 죽은 자들의 달로 명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재 형의 <11월>이 어머니를 더욱 보고 싶게 하였습니다.
2007. 2. 20. 박찬일 배상
▲ 김다은의 우체통
*새어머니가 있는 같은 처지에 공감
박찬일씨는 시 속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곧잘 표현하곤 한다. 그는 “문재 형의 시 <11월>을 읽으며 나와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꼈다. 어머니가 있고 새 어머니가 있고 그리고 한꺼번에 제사를 지내는 것까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시 내용이 현실과 다를 수도 있다고 했더니, “오독도 창조적인 독서의 한 방법이니 잘못 읽었다 해도 이해해주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두 사람의 첫 대면은 (어느 해던가?) 출판사 문학동네의 한 회식 장소에서였고, 가장 최근 만남은 지난해 11월 박찬일이 <시와 시학> 에서 젊은 시인상을 타는 장소에서 였다고 한다. 박찬일은 “최근 문재 형의 시들이 상징을 벗어나 점점 현실적인 성향을 지니니 여유가 느껴진다”며 흐뭇해 했다. 시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김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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